그간 출전 기회가 적었던 아쉬움을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풀어냈다. 자신도 충분히 4번 타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증명한 한 판이었다. 이재원(26, SK)의 맹타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SK의 미래도 덩달아 밝아지고 있다.
이재원은 올해 SK 타선의 ‘소리 없는 강자’다. 최정, 스캇, 박정권 등 다른 중심타자들에 비해 출전 기회는 적지만 나갈 때마다 한 건씩을 해주고 있다. 12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말 그대로 폭발했다. 가벼운 부상을 당한 루크 스캇을 대신해 선발 지명타자 및 4번으로 출전, 4타수 3안타(1홈런) 5타점의 원맨쇼를 펼쳤다. 이재원의 맹활약 속에 SK도 위닝시리즈를 예약할 수 있었다.
한 경기 폭발도 아니다. 올 시즌 내내 타격감이 좋다. 10경기에서 27타석을 소화하면서 타율이 무려 5할4푼2리(24타수 13안타)에 이른다. 13개의 안타 중 장타 비율도 꽤 높다. 2루타가 3개, 3루타가 1개, 홈런이 1개다. 이처럼 시즌 초반부터 감을 잘 이어오고 있었기에 12일 찾아온 기회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이재원의 활약에 향후 SK의 중심타선 구도도 재밌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이런 기록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주로 대타로 나서 만들어 낸 기록이기 때문이다. 10경기 중 이재원이 선발로 출전한 경기는 5번 밖에 되지 않는다. ‘왼손 킬러’라는 이미지와 실제 그런 실적을 가지고 있는 이재원은 주로 왼손 투수가 상대 선발로 나설 때 출전했다. 나머지는 모두 대타 출전이었다. 아무래도 출전 시간이 들쭉날쭉하다보니 타격감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다.
그러나 이재원의 방망이는 그런 상식을 무시하고 있다. 10일 잠실 두산전에서 대타로 나서 1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경기에서는 모두 1개 이상의 안타를 때렸다. 대타 타율도 8할(5타수 4안타)에 이른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역 최고의 타자 출신인 이만수 SK 감독도 “앉아 있다가 나가서 안타를 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사실상 확률이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대단한 선수다”라면서 “존경할 만한 일”이라고 극찬했다.
물론 아직 이재원의 자리가 확실하게 자리 잡혔다고는 볼 수 없다. 스캇이 부상에서 돌아오면 라인업에 이재원을 넣을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다. 지명타자로 넣자니 스캇과 포지션이 겹친다. 스캇이 외야로 나가야 이재원의 자리가 생기는데 스캇의 수비력을 고려하면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이재원도 이를 알고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주 포지션인 포수 훈련은 물론 1루수 수비 훈련도 병행 중이다. 정신이 없을 법 하지만 이재원은 “1루수 수비는 경기 전 10분 정도 연습한다.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라며 오히려 즐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이재원의 모습은 SK의 미래에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어차피 외국인 타자들은 외국인이라는 한계가 있다. 오랜 기간 팀을 책임질 선수들은 아니다. 결국 확실한 국내 거포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재원은 SK에서 딱 그 임무를 할 선수다. 올해 기록을 보면 ‘왼손 킬러’라는 말도 무색하다. 왼손에게는 타율 6할6푼7리로 여전히 강하지만 오른손을 상대로도 4할5푼5리를 쳤다. 홈런도 오른손 투수로부터 뽑아냈다. 그간 ‘미완의 대기’였던 이재원의 4번 본색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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