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다.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지난 2월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만난 이만수 SK 감독은 올 시즌 투수 보직에 대해 말을 아꼈다. 스스로 정해둔 구상은 있었지만 그에 대한 확답은 미루는 모습이었다. 마지막까지 지켜본 뒤 발표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렇게 장고를 거듭한 이 감독의 판단은 옳았다. ‘김광현 선발-박희수 마무리’라는 이 감독의 최종 결단은 시즌 초반 SK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 감독은 지난 전지훈련에서 투수 보직에 대한 고민이 컸다. 지난해 마운드, 특히 불펜이 무너지며 한 시즌을 그르친 경험이 있기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가지고 있는 전력을 극대화하고자 한 때 ‘김광현 마무리 기용’을 고민하기도 했다. 지난해 SK는 7회 이후 8번의 역전패를 당하며 이 부분에서 리그 7위에 머물렀다. 김광현이 마무리로 가면 박희수를 중간에 쓸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들어온 전력이 없는 상황에서 그만큼 머리가 복잡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선수들의 컨디션을 보고 순리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김광현이 플로리다 전지훈련부터 쾌조의 몸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몸 상태가 올라오는 속도가 다소 더뎠다고 생각했던 박희수도 오키나와 캠프 막판 이 감독을 안도케 하는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자신의 원래 구상에 가장 잘 부합하는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그렇게 이 감독은 2월 27일에야 두 선수의 보직을 대외적으로 최종 확정했다.
요약하면 ‘원래대로’였다. 이 감독도 애당초 이런 시나리오가 가장 좋다는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캠프를 거치면서 이 구상을 눈으로 확인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게가 실렸고 사실상 오키나와 캠프 돌입 단계에서 마음을 굳혔다. 이런 선택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김광현은 선발에서, 박희수는 마무리에서 모두 자신의 몫을 비교적 잘 수행하고 있는 까닭이다. 앞뒤의 확실한 거목인 두 선수의 존재는 든든한 힘이다.
김광현은 3경기에서 1승에 그치고 있지만 어깨 상태가 좋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다. 힘 있는 공을 던지고 있고 회복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상대 타자들의 끈질긴 승부에 다소 고전했던 점은 있으나 경험이 풍부한 김광현이다. 앞으로는 이를 역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5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모두 팀의 승리를 지킨 박희수는 현 시점에서 리그 최고의 마무리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평균자책점은 ‘0’이다. 철벽이다.
책임감도 부쩍 강해졌다. 김광현은 요즘 “최대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겠다”라는 목표를 가장 앞에 두고 있다. 팀이 자신을 에이스로 믿어주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해 확실한 투구로 보답하고 싶어 한다. 완급 조절 등 그간 부족했던 점에서도 개선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박희수도 8회 1사에 마운드에 오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등 불안한 불펜 전력을 보완하기 위한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시즌 초반 비교적 좋은 출발을 알린 SK의 믿을 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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