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SK 감독은 오키나와 전지훈련 당시 “5번 타순에 위치할 선수가 고민이다”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실제 시즌 개막 때까지 이 고민은 계속됐다. 그러나 그런 이 감독의 스트레스를 날려줄 해결사가 떠오르고 있다.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이재원(26, SK)이 그 주인공이다.
이재원은 18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KIA와의 경기에서 4타수 3안타 3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11-0 대승을 이끌었다. 특히 1-0으로 앞선 6회 2사 1,2루에서 상대 선발 양현종을 무너뜨리는 2타점 3루타를 뽑아내며 팀 승리의 결정적인 몫을 했다. 홈런 하나만 있었으면 사이클링히트였다. 2회에는 깜짝 도루를 성공시키며 KIA 배터리를 화들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재원의 이런 활약은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사실 이재원은 SK 타선의 확고부동한 주전 선수가 아니다. 초반에는 대타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타 타율 8할(5타수 4안타)을 기록하는 놀라운 모습으로 꾸준히 타격감을 조율했고 선발로 나서는 날에는 가지고 있는 타격 본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12일 대구 삼성전의 5타점 폭발은 상징적인 경기였다.

이에 대해 이재원은 18일 경기 후 “특별히 공이 크게 보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에 감이 워낙 좋아서 자신감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SK로서는 이렇게 감이 좋은 이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차세대 4번 타자’로 키워야 함은 물론 당장은 5번 자리에서 계속된 실험이 이뤄질 전망이다. 이는 올 시즌 SK 타선의 완성도와도 연관이 있다.
사실 SK 타순의 전략적 지점은 단연 5번 타순이다. 중요성이 큰 만큼 고민도 컸다. 이만수 감독은 타순을 지그재그로 연결시키고 싶어 했다. 지난해 상대가 원포인트 전략을 많이 썼고 이에 적잖은 손해를 봤다는 계산 하에 나온 판단이었다. 그런데 3번 최정-4번 스캇에 이어지는 5번 우타자가 마땅치 않았다. 6번에 또 하나의 중장거리 타자 박정권이 버티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 연결고리가 마지막 과제였다.
이에 이 감독은 김상현을 적극적으로 실험했고 시범경기 때는 나주환을 올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김상현이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 구상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결국 박정권이 5번을 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재원의 깜짝 등장으로 다시 행복한 고민이 시작됐다. 이재원이 이 자리에 들어오려면 스캇이 좌익수로 나가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공격력을 극대화시키는 전술로 고려할 만하다. 이 타순이 빛을 발하며 7회에만 8점을 뽑아낸 18일 문학 KIA전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재원은 그간 “왼손투수에게 강하다”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올해는 좌(.667) 우(.438) 옆구리(.500)를 가리지 않는 맹타다. 이재원도 “이제는 왼손킬러라는 말 대신 다른 별명을 붙여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은연 중에 자신감이 있다. 반쪽 선수라면 5번에 넣기에 부담이 있겠지만 올해 이재원은 아니다.
상대에 맞게 라인업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 수비가 중요할 때는 스캇 지명타자-박재상 좌익수로 라인업을 짜고, 공격이 중요할 때는 스캇이 좌익수로 나서고 이재원이 라인업에 들어가는 식이다. 어쨌든 이재원의 뜨거운 방망이가 SK의 구상에 상당 부분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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