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전남 진도에서 발생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국민들 마음에 조기가 게양된 요즘, 각 방송사 보도국이 뉴스 특보 체제로 전환됐다. 보도 전문 YTN과 지상파는 물론이고 종편 4사 역시 개국 이후 처음 겪어보는 대규모 해상 사고 여파를 생중계하느라 숨 가쁜 모습이다.
사고가 발생한 16일 오전부터 각 방송사는 정규 편성을 중단한 채 거의 모든 시간을 세월호 사건으로 채우며 재난 방송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이 와중에 JTBC의 한 남성 앵커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여고생을 울리는 부적절한 전화 인터뷰로 비난을 자초했고, 손석희 사장이 “후배를 잘 못 가르친 제 책임”이라며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260여 명의 실종자 수색이 난항을 겪으며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아서일까. 일부 종편 채널이 심야 시간대 뉴스 특보 시간을 줄이고 있다. 지상파에 비해 부족한 인력과 장비, 노하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되지만 국가 재난에 어쩐지 뒷짐을 쥐고 있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채널A의 행보다. 채널A는 사고 발생 사흘째인 지난 18일 밤 11시, 뉴스 특보 대신 자사 간판 프로그램인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을 내보냈다.

같은 시간 MBN과 TV조선은 각각 웃음기 없는 건강 토크 프로 ‘엄지의 제왕’, 휴먼 다큐멘터리 ‘봄날’을 재방송으로 대체 편성했고, JTBC는 종편 중 유일하게 자정까지 뉴스 특보를 내보내며 국민적 관심사를 다뤄 대조를 보였다. 이날 종편과 지상파를 통틀어 예정된 본방송을 송출한 곳은 채널A가 유일했다. 가히 ‘나 홀로 역주행’이라 부를 만 한 모습이었다.
물론 이날 ‘먹거리 X파일’ 편성 자체가 잘못 됐다고 보진 않는다. 알다시피 이 프로는 예능도 아니며, 국민들의 바른 먹거리를 위해 불량 식자재와 유통 업체, 식당을 고발해 온 공익성 높은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소개된 착한 식당을 찾아다닐 만큼 기자 역시 즐겨 봤고, 신뢰감과 인간미까지 겸비한 이영돈 PD의 담백한 진행과 눈웃음 역시 좋아한다. 여전히 종편의 격을 높인 몇 안 되는 프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이영돈 진행자에게 집중하기 어려웠다. 착한 육회에 이어 소개된 미더덕 탓이었을 것이다. 봄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미더덕을 보면서 차디 찬 맹골수도에서 72시간 넘게 사경을 헤매고 있을 실종자와 사망자들이 연상됐다면, ‘교양’을 ‘리얼 다큐’로 받아들인 기자의 괜한 생트집이자 확대 해석인 걸까.
경쾌한 배경 음악과 함께 미더덕회 시식 전 이영돈 PD가 입맛을 다시며 “바다의 향을 그대로 스튜디오로 가져왔습니다” “오늘 아주 즐겁습니다”라는 멘트 역시 평소와 달리 거슬렸다. 차라리 이날 중반까지 소개된 착한 육회 분량을 늘려 방송을 마무리했다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였다. 경남 창원 앞바다와 미더덕이 등장할 때마다 ‘바다에서 실종자 구출 중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다.
이영돈 PD가 이날 미더덕으로 만든 덮밥과 찜, 전을 맛보던 밤 11시대는 진도 앞바다에서 해경 잠수요원이 세월호 3층 격실 진입을 시도했고, 안타깝게 사망자가 한 명 추가되는 실낱같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시간이었다. 광고 화면에조차 끊임없이 속보 자막을 내보낸 YTN과 달리 채널A는 ‘먹거리 X파일’ 방송 중 관련 속보 자막 처리에도 인색했다. 온 국민이 실종자 수색 결과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는데, 실종자의 기적적인 생존 가능성을 지레 포기한 건 아닌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아무리 비싸고 디자인이 뛰어난 옷도 체형과 TPO에 맞춰 입어야 돋보이듯, 앵커와 기상 캐스터가 블랙 의상만 착용한다고 해서 조의를 표하는 건 아니란 걸 이영돈 채널A 전무도 잘 알 것이다. 이제 불과 사고 사흘째, ‘톡하고 터지는 봄 바다의 향기’ 미더덕을 다룬 ‘먹거리 X파일’이 어쩐지 국민 정서를 추월했다는 생각이다.
bskim01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