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10대 소녀 잔혹사..그래도 희망을
OSEN 최나영 기자
발행 2014.04.19 16: 10

현재 흥행 중인 한국 영화들의 특징은 10대 소녀의 잔혹사를 다룬다는 데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방황하는 칼날'(이정호 감독)과 '한공주'(이수진 감독)가 박스오피스 상위 10위 권 내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한국영화들이다. '방황하는 칼날'은 18일 전국에서 3만 9532명을 모아 3위, '한공주'는 2만 5735명을 모아 6위를 차지했다. 특히 '한공주'는 상업영화를 지향한 작품이 아님에도 입소문으로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다.
이 두 작품은 개봉 전부터 그 비슷한 소재로 관심을 모았다. '방황하는 칼날'은 한 순간에 딸을 잃고 살인자가 돼 버린 아버지 상현(정재영)과 그를 잡아야만 하는 형사 억관(이상민)의 추격을 그려낸 드라마이고, '한공주'(이수진 감독)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쫓기듯 전학을 가게 된 공주(천우희)가 새로운 곳에서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일종의 성장물이다.

두 작품 모두 10대 성범죄 문제를 끄집어 냈는데, '방황하는 칼날'은 소설(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이 바탕이 됐고, '한공주'는 실화와 접목해있다. 하지만 '방황하는 칼날'의 개봉 전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딸이 지목한 용의자를 살해한 남성이 경찰에 자수한 실제 사건이 발생해 영화와 맞물려 시선을 끌었다. 분명한 건 영화는 현실의 거울이라는 점이다. 
영화는 비슷한 소재를 취하고 있지만 주목하고 있는 시선은 다르다. '한공주'는 피해자 여고생의 이야기를, '방황하는 칼날'은 피해자 딸을 둔 아빠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렇기에 '한공주'가 소녀 감성 속에서도 섬세한 심리 묘사로 앙칼진 잔혹함을 안기는 반면, '방황하는 칼날'은 강도 높은 분노 표출과 장면 수위 속에서도 오히려 절제된 듯 가슴 먹먹한 울림이 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피해자이지만 피해자가 아니게 만드는 사회의 부조리를 말하다는 공통점이 있고, 그 중심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고통을 당한 10대 소녀가 있다. 
천우희가 연기한 '한공주'의 공주는 스스로 아무렇지 않으려고 해도 주위 사람들 때문에 도망치고 숨고 극으로 몰린다. 연약하고 섬세한 소녀의 고통이 살갗으로 다가온다.
'방황하는 칼날'에서 이수빈이 연기한, 상현의 딸이자 소년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수진은 그냥 '운이 안 좋아' 참혹한 사건의 희생자가 된다. 분명 가해자들이 있지만, 그 가해자들은 어느 순간 피해자로 둔갑한다. '방황하는 칼날'의 경찰 취조신에서 가해자 부모들이 울면서 내뱉는 말은 조용히 분노를 일으키고,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는 '한공주'의 포스터 문구는 그렇기에 의미심장하다. 
한참 성장해야 할 10대 소녀의 잔혹한 상처를 그린다는 점에서 이 영화들은 관람하기에 불편할 수 있다. '한공주'의 마지막에서는 그래도 희망의 메시지를 얻는 관객들이 적지 않지만, '방황하는 칼날'은 현실적이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래도, 이들 영화들을 통해 스치고 지나갈지라도 한 차례 사회적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희망 아닐까.
nyc@osen.co.kr
'한공주', '방황하는 칼날'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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