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슬픔" 연예계, 성숙한 대응이 오히려 슬프다
OSEN 이혜린 기자
발행 2014.04.20 17: 44

[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큰 사고가 워낙 많아서 그럴까. 지난 16일 오전 전남 진도에서 발생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국민이 슬픔에 빠져있는 가운데, 연예-방송계도 함께 고통을 나누며 성숙하고 차분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잊을만하면 큰 사고가 터져 "국가적 슬픔"에 빠지곤 하는 현실에, 대응 메뉴얼이 완성 단계라는 웃지 못할 씁쓸한 소리도 나온다.
연예계는 국민들의 정서와 가장 맞닿은 산업인데다, 보도 역할을 하는 방송사의 일정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어, 사건-사고에는 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왔다. 특히 화려한 '쇼'를 베이스에 깔고 있는 가요계는 이같은 사건-재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상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력이 좀 있는 음반제작자 치고 "OO 사고 때문에 망한 음반 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 물론 '그깟' 음반 하나가 무슨 대수냐는 말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같은 사태가 정말 자주 일어난다는 점은 영 씁쓸하다.
실제로 세월호와 비슷한 예시를 찾는 데에는 시계를 오래 거꾸로 돌리지 않아도 된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가 대표적. 당시 온 국민이 큰 충격에 빠졌고, 연예계는 한달 넘게 올스톱 됐다. 드라마, 예능은 물론이고 가요계는 더욱 조심스러웠다. 음악방송이 한달 가량 결방됐다. 당시 컴백 무대를 딱 한번 하고 잊혀지다시피 한 몇몇 팀들의 사연은 아직도 회자된다.

그 해는 잔인했다. 11월에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졌다. 온국민이 놀랐는데, 연예계가 그대로 돌아가선 안됐다. 드라마, 예능, 가요계가 즉각 중단됐다. 수많은 팀들이 컴백을 뒤로 미뤘다.
과연 그해만 그랬을까. 2011년 3월에는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추모 열기가 높았고, 지난해 7월에는 항공기 추락 사고로 인해 몇몇 컴백 일정이 조정됐다.
사실 처음부터 모두가 순조롭게 추모 열기에 동참한 건 아니었다. 인기 예능 결방 관련 기사 밑에는 열성팬들이 "내가 방송을 볼 권리와 국가적 추모 분위기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댓글을 다수 달았다. 남들이 추모할 권리와 내가 쇼를 즐길 권리가 충돌할 때, 무조건적으로 전자가 이기는 건 '전체주의적 발상'이 아니냐는 논의도 곳곳에서 발생했다.
연예가도 갸우뚱했다. 추모 분위기를 받아들이면서도, 직격탄을 맞는 현실에는 당연히 불만이 있었다. 몇몇 가요관계자들은 "추모는 당연한 거지만, 드라마는 금세 정상화되면서 가요계에만 너무 가혹한 게 아니냐"고 했다. 일부 개그맨들은 "모든 행사와 방송이 취소돼 당장 수익이 0원"이라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사회적 이슈에 '울컥'해서 과격한 반응을 보이거나, 혹은 너무 관심이 없어서 홀로 신난 일상을 공개한 몇몇 연예인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최근 추모 분위기와 연예가 잠정 휴업과의 직접적 연관관계가 성립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쯤으로 풀이된다. 그해 3월 노무현 전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온국민이 깜짝 놀랐을 때에만 해도 일부 행사는 강행되려 했는데 연예인 측에서 먼저 불참을 통보하며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2009년에는 3월 노무현 전대통령, 8월 김대중 전대통령의 서거를 연이어 겪으면서 국가적 추모 분위기에 연예계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메뉴얼이 생기기 시작한 셈인데, 당시만 해도 예능 프로그램 결방이 막판까지 혼선을 겪으며 '한다, 안한다' 취재 열기가 높았다.
이후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은 연예계는 세월호 사건에서 더 이상 우왕좌왕하거나 고심하지 않는다. 가요계는 이 사건이 심상치 않은 참사가 될 것이라고 판단된 16일 오후, 앞으로 2주 이상 활동이 중단될 것임을 즉각적으로 예감했다. 공식 발표 시기는 각기 달랐지만, 이후 일정 조정에 대한 논의가 제일 빨리 진행됐다. 음악방송이 재개돼도 다시 밝은 노래를 부르는 데까지는 2주가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는 상태. 천안함 사건때 4주 결방을 겪었던 터라 모든 가요기획사는 컴백 시기를 다시 '무'에서 논의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들은 아예 녹화를 하지도 않았다. 워낙 침통한 일이라 출연자들이 즐겁게 녹화를 할 수도 없었겠지만, 행여 그 녹화 현장이 외부에 유출됐을 경우의 후폭풍도 심각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결방, 행사 취소 여부도 더 이상 문의할 사항이 아니다. 이제 취재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각 영화관계자, 가요기획사, 방송사들은 제작보고회 취소, 컴백 연기, 예능 결방 등을 먼저 밝히고 있다. 연예인들도 최대한 정제된 입장을 밝히거나 조용히 추모 열기에 동참하고 있다. 홍보성 보도자료도 뚝 끊겼다.
엉뚱한 발언으로 논란이 툭 터지거나, 행사 주최가 여론의 '간을 보면서' 일정을 '진행한다, 안한다' 우왕좌왕하던 불과 몇년 전과 매우 대조적이다. 수년째 국민적 추모 분위기를 겪어온 이들이 '대응 메뉴얼'을 갖춘 셈이다.
성숙한 대응은 물론 반갑다. 하지만 그 메뉴얼은 앞으로 쓸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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