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날씨가 가을의 향기를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박정권(33, SK)이 ‘가을 사나이’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의 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쯤 되면 SK의 ‘봄 해결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박정권은 20일 현재 리그 타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17경기에서 18개의 타점을 수확했다. 홈런도 3개나 된다. 말 그대로 해결사다. 5번과 6번 타순을 오가며 루상의 주자를 싹쓸이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득점권 타율은 무려 4할5푼5리에 이른다. 박정권 앞에 위치하는 최정과 스캇의 출루율을 생각하면 타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기회에 강한 선수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이만한 승부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큰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런 이미지 구축에 한 몫을 거들었다. 그런데 올해는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봄부터 폭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슬로 스타터’ 이미지가 있었던 박정권을 생각하면 예사롭지 않은 타격감이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를 기준으로 박정권의 3~4월 타율은 2할5푼9리였다. 자신의 이 기간 통산 타율(.270)보다 떨어지는, 어찌 보면 평범한 성적이었다. 4월 타율은 2할5푼8리, 5월 타율은 2할5푼1리에 불과했다. 항상 봄에 타격감이 썩 좋지 않은 점이 있었다. 대신 코스모스 냄새가 나면 귀신같이 살아났다. 박정권의 10월 타율은 2할9푼3리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이런 박정권의 기세는 대개 포스트시즌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를 고려하면 올해 타격감은 ‘의외’인 측면이 있다. 사실 박정권은 전지훈련 때까지도 타격감이 그리 좋지 않았다. 플로리다 캠프부터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며 노력했지만 자신의 뜻대로 방망이가 돌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키나와 캠프 막판에는 충수염 수술을 받아 훈련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시즌을 코앞에 두고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다. 시즌 초반에 대한 우려가 모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모든 예상은 깨졌다.
비결은 욕심을 버린 것이다. 오히려 힘을 뺐더니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박정권의 설명이다. 박정권은 “최근 욕심없이 짧게 치려고 노력한 부분이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명예회복에 대한 의지도 집중력으로 이어진다. 초반 성적이 좋다보니 성적에 쫓길 일도 없다는 심리적 부수효과도 있다. 이처럼 박정권 효과가 발휘된다면 SK 타선의 파괴력은 리그 정상급으로 뛰어오를 수 있다. SK 타선의 올해 중심타선 타율은 3할1푼4리다. 박정권이 부진했던 지난해 4월까지의 중심타선 타율은 2할5푼3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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