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경험을 했죠. 지금 이런 경험을 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경기 시작 첫 타자에게 던진 공이 손에서 빠졌다. 고의성은 없었지만 운이 없게도 헬멧에 맞았다. 곧이어 내려진 퇴장 명령.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선수들에게도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런 일을 아직 1군 무대 경험이 없는 ‘루키’ 유희운(19, kt)이 겪었다. 보통은 벤치를 볼 면목이 없어 풀이 죽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 그러나 유희운은 “좋은 경험을 했다”라고 씩 웃었다. 지나간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대담함이 엿보였다. kt의 기대치도 이 지점에 있다.
kt는 지난해 신인지명회의에서 자신들에게 배정된 두 장의 신생팀 특별지명권을 심재민과 유희운에게 썼다. 가장 뛰어난 왼손 투수라는 심재민, 그리고 가장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은 오른손 투수 유희운을 동시에 손에 넣었다. 이 중 심재민은 입단 후 곧바로 팔꿈치 수술을 받아 아직 재활 중이다. 반면 유희운은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박세웅 조현우라는 동기들과 함께 일찌감치 선발 수업을 받고 있다.

아직은 성적이 썩 좋지는 않은 편이다. 고교 시절 많은 공을 던졌던 유희운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kt의 전지훈련에 ‘보호령’이 떨어진 투수였다.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속도가 다소 더뎠다. 아직도 자신의 직구 최고 구속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1군에 올라가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선배들에게 고전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은 투구내용도 들쭉날쭉한 편이다.
하지만 성장세가 빠르다는 것이 kt 벤치의 평가다. 유희운도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면서 얻은 교훈을 차분하게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다. 유희운은 “프로무대가 확실히 힘이 있다. 스트라이크존도 좀 더 좁은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라고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살폈다. 제구 문제, 투구 패턴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입에서 끊임없이 나온다.
부족한 점을 알고 있다는 어쩌면 큰 축복일 수도 있다. 전도유망한 자원인 유희운같은 투수에게는 더 그렇다. 보완하는 속도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빠르다. 한편으로는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살을 빼고 근육량을 키우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내년 1군 무대 진입을 노리는 유희운의 차분한 마스터 플랜이다. 그래서 그럴까. 유희운은 “아마추어 때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것 같다”라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워낙 신체조건이 좋은 선수다. 이 과제를 잘 수행한다면 프로에서 통할만한 구위를 갖출 수 있다는 게 구단의 기대다. 동기들과 함께 끊임없이 이야기하면 꿈을 키우고 있기도 하다. 유희운은 “선발진에서 던지는 박세웅 조현우 등 동기들끼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잘 던진 날은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하고, 못 던진 날은 서로를 위로하며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유희운은 출발점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차분하게 길을 밟는다면 kt에서 또 하나의 대형 에이스감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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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위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