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기황후’ 하지원이 무섭다. 천진난만, 철없고 유쾌했던 기승냥(하지원 분)은 시간이 지나고 황궁 안 험난한 권력 투쟁을 겪으며 조금씩 더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인물이 돼 가고 있다. 온갖 종류의 악당들을 상대하며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던 기승냥은 이제 때로는 악녀보다 더 독한 모습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지난 21일 방송된 MBC ‘기황후’에서는 자신의 친 아들이었던 별이, 마하(김진성 분)을 죽게 한 폐황후 바얀 후투그(임주은 분)과 그의 삼촌 백안 장군(김영호 분)을 죽이는 기승냥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기승냥은 자신의 친아들임을 이제 막 알게 된 마하가 바얀 후투그가 사주한 독화살에 맞고 결국 죽음을 당했단 이야기에 밤새 오열했다. 아들의 죽음은 다시 한 번 기승냥을 독하게 만들었다. 그는 황제 타환(지창욱 분)에게 약을 먹여 자신의 처소로 데려온 후, 황제가 자고 있는 사이 바얀 후투그에게 사약을 명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에게 끝없이 위협을 가하는 백안 장군(김영호 분)을 없애기 위한 계략을 짰다. 황제를 자신의 손에 넣고 백안 장군을 도발한 뒤 그가 공격성을 드러낼 경우 반역으로 몰아 죽이려 한 것. 백안은 보기 좋게 기승냥의 계략에 넘어갔다.
그러나 백안을 향한 타환(지창욱 분)의 신뢰와 애정이 걸림돌이었다. 타환은 반역죄로 잡힌 백안을 설득해 기승냥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만들었고 끝내 백안의 목숨을 살려주고자 했다. 타환의 깊은 신임에도 기승냥은 백안을 믿을 수 없었다. 몽골인 순혈주의자인 백안이 고려의 핏줄인 자신의 아들 아유를 가만히 두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
결국 기승냥은 백안의 조카이자 책사인 탈탈(진이한 분)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기승냥과 백안 사이에서 고뇌하던 탈탈은 권력욕에 눈이 먼 숙부를 버리고 기승냥의 손을 잡았다. 기승냥은 자신을 죽이려던 백안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탈탈은 그런 숙부를 자신의 손으로 찔러 죽였다.
이 모든 것은 기승냥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연철(전국환 분)부터 타나실리(백진희 분), 당기세(김정현 분), 황태후(김서형 분) 등 황궁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악인들을 거치며 내공을 쌓은 그는 이제 술수에서만큼은 그들을 능가할 만한 지략과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가끔씩은 드라마 속 진짜 악역은 기승냥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
하지원은 그런 기승냥의 변화상을 절제된 연기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드라마가 50회 가까이 방송되는 동안 그는 철부지 승냥이에서 사랑에 빠진 여인으로, 자녀를 잃은 엄마로, 강인한 여장부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왔다. 주인공의 악역화(?)에도 드라마가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지원의 설득력있는 연기 때문이다.
현재 기승냥이 황후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이유는 죽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복수 때문이다. 또 고려인에 대한 원나라 사람들의 탄압도 한 몫했다. 하지원은 기승냥의 살기어린 독기를 이런 억울함과 설움 속에서 일어나기 위해 애쓰는 한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승화시키며 캐릭터의 완성도를 살렸다. 누르면 누를수록, 밟으면 밟을 수록 선명한 색을 발하며 독기를 발산하는 기승냥의 활약이 어디까지 계속될까, 기대감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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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