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시즌 초반이라 벌써부터 샴페인을 터트리기는 조심스럽다. 그렇다 해도 루이스 히메네스(32,롯데)의 초반 페이스는 놀랍기만 하다.
히메네스는 25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SK전에 1루수 5번 타자로 선발 출전, 2타수 2안타 1홈런 3볼넷을 기록했다. 걸리면 넘어간다는 걸 보여주면서 시즌 5호 홈런을 날렸고, 투수들이 피해가자 무리해서 욕심을 내지 않고 볼넷을 골라내는 선구안까지 보여줬다.
1회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낸 히메네스는 3회 무사 1루에서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로 1루에 있던 주자를 3루까지 보냈다. 이후 황재균이 뜬공 때 3루 주자가 득점했다. 잡아당겨 치는 히메네스를 대비해 SK 수비수들은 오른쪽으로 수비 위치를 옮겼는데, 교묘하게 수비수가 없는 왼쪽 외야 인필드에 공이 떨어졌다.

4-4로 동점이던 5회, 히메네스의 방망이가 불을 뿜었다. SK 3번째 투수 임경완의 슬라이더(118km)가 높은 곳에 몰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겼다. 비거리 125m짜리 대형 홈런이었다. 곧이어 황재균까지 연속타자 홈런을 터트렸다.
특히 돋보인 장면은 9회였다. 히메네스는 6-7으로 뒤진 9회말 1사 1루에서 타석에 섰다. 앞선 타석에서 최준석은 큰 것 한 방을 의식하다 박희수의 높은 공에 헛스윙 삼진을 당한 상황. 그렇지만 히메네스는 풀카운트 승부를 펼친 끝에 볼넷을 골라내고 1루에 걸어 나갔다. 5회 홈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메네스는 홈런을 노리기보다 침착한 선구안으로 팀에 기회를 이어갔다. 박희수와 같이 제구가 좋은 선수의 공은 무리해서 큰 것을 노리다가 범타에 그치기 십상인데, 히메네스는 바깥쪽 유인구를 끝까지 참아냈다. 비록 경기는 황재균의 병살타로 끝이 났지만, 히메네스의 참을성과 선구안은 분명 돋보였다.
현재까지 히메네스의 타율은 4할2푼6리(47타수 20안타), 5홈런에 14타점을 기록 중이다. 장타율은 이날 경기로 무려 8할9리까지 치솟았고, OPS는 1.343까지 올라갔다.
롯데에서 성공을 거둔 외국인타자는 펠릭스 호세와 카림 가르시아가 있다. 가르시아는 화끈한 홈런포와 장타로 사랑을 받았고, 호세는 아예 투수들이 승부를 피했다. 2001년 호세가 기록한 출루율 5할3리는 프로야구 최고 기록이다.
13경기를 치른 히메네스는 가르시아보다 호세에 가까워 보인다. 영입 당시 롯데가 발표했던대로 히메네스는 선구안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볼넷을 11개 얻어낸 동안 삼진은 8개만을 당했다. 물론 긴 시즌을 치르다보면 타격 컨디션이 떨어질 때가 오겠지만, 선구안이 좋은 타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클러치 능력도 눈여겨 볼 만하다. 호세가 더욱 사랑받은 이유는 결정적인 순간 홈런을 날렸기 때문이다. 히메네스는 이날 4-4에서 터진 재역전포를 포함해 홈런 4개 모두 영양가 만점이었다. 데뷔포는 연장전에서 나온 끝내기포였고 나머지 홈런들도 접전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히메네스가 호세의 재림이라면, 롯데는 중심타선 걱정을 완벽하게 날려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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