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는 이미 자질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마스크도 자질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재원(26, SK)이 중요한 시험대에 섰다. 어쩌면 SK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도 있는 시기다.
이재원은 올 시즌 초반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사나이로 손꼽힌다. 지난해 마무리캠프에서 손목을 다쳐 재활에 매달렸지만 정규시즌 시작과 맞춰 복귀해 폭발적인 방망이를 과시 중이다. 25일 현재 18경기에 나선 이재원의 타율은 무려 4할9푼. 홈런이 2개, 타점이 13개로 장타 비중도 적지 않았다. 시즌 초반 주로 대타로 나섰음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규정타석 진입도 눈앞에 들어왔다.
사실 방망이는 원래부터 재능이 있던 선수였다. 특히 왼손 투수에게 유독 강해 ‘왼손 킬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경험이 쌓이면 오른손이나 옆구리 유형의 투수들에게도 약하지 않은 대형 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는 진작부터 받아온 터다. 이런 전망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에 SK 코칭스태프도 고민이 생겼다. 이런 이재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평범한 진리는 “이재원은 포수다”라는 사실이다.

인천고 시절 대형 포수감으로 이름을 날린 이재원은 프로 입단 후 마스크를 쓰는 일이 적었다. 입단 당시에는 박경완이라는 기라성 같은 포수가 있었고 5년 선배인 정상호가 백업으로 버텼다. 군에 가 있는 사이 조인성이라는 또 하나의 좋은 포수가 팀에 입단해 이재원이 마스크를 쓸 일은 거의 없었다. 상무 시절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포수에 대한 꿈을 키워온 이재원으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조인성이 손가락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이재원에게도 기회가 생길 조짐이다. 정상호가 전 경기를 소화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경기에 따라, 혹은 경기 중간 상황에 따라 적당한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 SK의 1군 엔트리에 포수는 이재원 밖에 없다. 지난해 마무리캠프 때부터 이재원에게 포수 자리를 맡겼고 시즌 중에도 포수 훈련을 지시하며 전략적인 그림을 그려왔던 이만수 SK 감독의 구상이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것이다.
손목 부상으로 빠져 있는 루크 스캇이 돌아오면 이재원은 다시 벤치에 앉아야 한다. 스캇의 수비력이 불안하다는 이유다. 이재원의 공격력이 아쉬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재원이 간혹 정상호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포수 마스크를 쓴다면 공격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현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이론적으로는 최정 스캇 박정권 이재원에 한동민 혹은 김상현까지 들어가는 공격적인 라인업을 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재원의 수비력이다. 포수는 풍부한 경험이 필요하다. 동료 투수들의 성향, 상대 타자들의 성향에 대해 모두 꿰차고 있어야 한다. 이재원은 이런 점이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포수로서의 기본적인 재능은 충분하다. 이만수 감독은 “블로킹은 세 명의 포수 중 가장 낫다”라고 말할 정도다. 혹은 25일 경기처럼 지명타자로 출전해 추후 포수 자리로 들어가거나 대타로 투입돼 수비를 소화하는 방법도 생각할 법하다. 1~2이닝 정도의 볼 배합은 벤치에서 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 가능성도 충분하다. 당장 이재원은 25일 경기 마지막을 지킨 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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