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현빈 정재영의 흐뭇한 'After You' 크레딧 양보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4.26 11: 41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의 두 주연 배우 현빈 정재영의 크레딧 양보가 요즘 영화계 화제다. 간혹 제작자와 투자사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배우들의 엔드크레딧 이름 순서인데, 두 배우가 서로 '상대방 뒤에 서겠다'며 양보를 자처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영화사 입장에선 3년 만에 컴백하는 현빈의 스타성을 최대한 극대화시키고 싶었을 것이고, 또 한편으론 극중 대동소이한 비중과 영화계 선배인 정재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역린'에서 현빈과 정재영 조정석은 쓰리톱이라 해도 누가 태클 걸지 못 할 만큼, 엇비슷한 분량과 비중으로 호연을 펼쳤다.
 아무리 회의를 거듭해도 뾰족한 묘수가 떠오르지 않자 제작사는 촬영 초반 조심스럽게 배우들에게 이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자칫 배우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남은 촬영과 후반 일정에 지장을 초래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때론 이런 돌직구가 변화구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는 적중.

'역린'의 제작사 초이스컷픽쳐스 최낙권 대표는 "당시 현빈씨가 먼저 '무슨 말씀이시냐? 당연히 제가 정재영 선배 뒤에 나오는 게 맞다'며 양보 의사를 밝혔고, 옆에 있던 정재영씨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정조가 타이틀 롤인데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손사레를 쳤다"고 말했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 싶었지만, 1차 편집 후 영화가 잘 나왔다고 확신한 몇몇 배우들의 소속사가 참았던 크레딧 욕심을 다시 내면서 또 한번 실타래가 꼬일 뻔했다. 하지만 이때도 정재영이 나서면서 상황이 정리됐다.
 정재영의 소속사 조한주 대표는 "경력과 기여도, 비중 등을 고려했을 때 정재영씨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게 맞지만, 본인이 '이런 개인적인 문제로 영화사에 아까운 시간 손실을 끼치고 싶지 않다. 영화가 잘 되는 게 먼저'라며 오히려 우리를 다독였다"고 말했다. 회사 입장에선 두고두고 아쉬운 결정이지만, 나무 보다 숲을 보기로 했다는 얘기였다.
 정재영 소속사가 끝까지 크레딧에 신경을 쓴 건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정재영이 '내가 살인범이다' 때 겪은 좋지 않은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 극장과 포스터, 포털사이트 영화 정보까지 정재영의 이름이 먼저 표기됐지만, 일본에서 발매된 DVD에선 박시후의 이름이 앞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정재영도 한류 스타를 앞세운 마케팅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사전에 양해조차 구하지 않은 일처리에 대해선 배우로서 자존심에 금이 가 한동안 허탈해 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크레딧 이름 순서가 '무슨 대수냐'는 일부 지적도 있지만, 자기 이름을 걸고 일하는 개인 사업자라는 관점과 영원히 기억되는 발자취라는 점에서 보면 또 그리 가볍게 넘어갈 문제만도 아니란 생각이다.
'역린' 현빈 정재영의 'After You' 크레딧 양보가 비슷한 문제를 겪는, 또는 겪게 될 다른 영화, 드라마의 모범답안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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