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재난사태에 대한 대중문화의 애도가 과연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그 방법과 기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깊은 슬픔에 잠긴 세월호 유가족을 생각하면 이마저도 죄스러운 심경이지만, 자발적인 애도-추모와 관계없는, 쓸데없는 논란 및 눈치보기 행정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사실상 정상화에 돌입했고 예능 프로그램도 하나둘씩 재개된 가운데, 왜 가요계에만 가혹하느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으며, 개그맨 이경규의 골프 보도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 슬프면 음악은 '중단'돼야 하는가

26~27일, 5월 3~4일에 걸쳐 고양 아람누리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음악 페스티벌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이하 뷰민라)가 지난 25일 급작스러운 공연을 취소하면서, 음악으로 애도는 과연 불가능한 것인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동안은 자발적인 공연 취소 움직임이 있었으나, '뷰민라'는 취소가 고양문화재단의 일방적인 통보로 인한 것임을 확실히 하면서 문제제기에 나선 것이다.
민트페이터의 이종현 프로듀서는 앞서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음악으로도 애도할 수 있다 ▲왜 뮤지컬, 연극은 되고 공연은 안되나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했다. 그는 "음악과 공연이라는 것의 본질이 기쁘고 즐겁고 흥을 돋우는 유희적인 기능도 크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정화하며 희망을 줄 수 있으며 그렇기에 그 어떤 문화보다도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중략) 콘서트를 제외하고는 오늘까지 뮤지컬, 연극, 클래식 섹션에서 단 한 건도 취소나 연기된 공연은 없었다. 과연 뮤지컬, 연극, 클래식 등의 공연물과 콘서트나 대중 음악은 과연 애도의 깊이가 다른 걸까?"라고 적었다.
# 혹시, 눈치보기는 아닌가
적지 않은 수의 뮤지션이 동조하고 있는 상황. 음악을 유흥의 수단으로만 해석한 촌스러운 행정이었다는 비판이다. 마침 가요계는 자발적 추모에서 점차 눈치보기로 나아가는 현 상황에 당혹감을 표하고 있던 차였다.
사건이 터진 지난 16일 가요계는 즉각 컴백을 모두 미루고 애도 분위기에 동참했었다. 엑소, 지나, 블락비를 비롯해 인피니트, 거미까지 4월말~5월초 컴백 가수들이 모두 일정을 연기했다. 콘서트도 아주 급박한 일정이 아니면 대부분 연기됐다.

문제는 이 '휴업'이 자발적 애도가 아니라 강요되는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5월 초중순으로 예정된 스케줄까지 모두 취소되자 가요계는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한 가요관계자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행사 취소 전화가 걸려온다. 애도를 위해서라기보다는, 행여 첫 스타트를 끊었다가 뭇매를 맞을까봐 걱정이 돼서다. 다른 행사 사정이 어떤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더라"고 말했다.
물론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행사측 입장도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실제 "이 와중에 무슨 공연이냐"는 시민 반응도 무시할 수 없다. 고양문화재단 측 관계자는 "이미 공연 세팅에 들어갔지만 민원이 넘쳤고, 공공기관이다 보니까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한다는 것은 굉장한 리스크를 감수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공연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 예능, 더 웃기고 덜 웃긴 게 있나?
예능도 조심스럽긴 매한가지. 지난 25일을 기점으로 MBC와 tvN이 예능 정상화에 나섰다. 나름의 기준을 내세웠다. MBC는 가족 예능은 오케이, tvN도 자극성 없는 예능은 오케이다. 이에 따라 '무한도전'은 결방됐고 '사남일녀'와 '나 혼자 산다', '세바퀴'는 전파를 탔다. tvN은 '꽃할배'는 내보내고 '코빅', 'SNL코리아'는 쉬게 했다.
케이블은 그렇다치더라도 MBC의 결정에는 찬반이 나뉜다. 예능인 이상 웃음을 담보로 하는 것인데,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실례는 아니냐는 것이다. 지상파에서 아직 예능 방영은 이르다는 의견이 따르고 있는 가운데, 시청자의 '즐길' 권리를 주장하는 의견도 보인다. 뉴스 특보가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뉴스만 내보내는 것도 의미가 별로 없으며, 기존 하이라이트 방송을 내보내는 것과 새 방송을 내보내는 게 무슨 큰 차이가 있느냐는 의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청자의 주된 반응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송사는 최대한 조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사남일녀’와 ‘나 혼자 산다’는 평소 사용하던 인공적인 웃음 장치를 제외했다. '세바퀴'도 앞서 진행된 녹화에서 최대한 자극적인 이야기를 빼고 편집했다는 입장이다.
시청자들은 예능 재개에 큰 반감을 보이진 않고 있지만 그 기준은 다소 아리송하다는 반응이다. '우리 결혼했어요'와 '무한도전', '일밤', '음악중심'은 과연 '더' 자극적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주 보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재개될 전망이라, 예능 재개를 둘러싼 논의는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장례가 아직 모두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상파가 예능을 어떻게 줄이고, 어떻게 슬픔에 동참할 것인지 방송사-시청자 간에 보다 더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 무작정 애도만 하자는 건 아니다
이 가운데 26일 불거진 개그맨 이경규의 골프 보도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인상적이다. 지나친 논란 만들기가 아니냐며 오히려 보도를 한 YTN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는 상태. 국가적인 애도 기간이긴 하지만, 한 연예인의 일상까지 집요하게 보도해 논란을 부추긴 건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였다는 반응이다.
대중이 평소 연예인에게 공직자보다 오히려 더 무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으로 풀이되곤 하지만, 이번만큼은 대중 연예인의 골프까지 문제삼는 것은 지나쳤다는 데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는 것.
네티즌은 이날 트위터 등 SNS를 통해 '골프는 운동인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공직자나 정치인도 아닌데 너무했다', '왜 야구나 일반 유흥은 문제 삼지 않나'하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물론 '골프는 사치스러운 운동이니 문제될 순 있다'는 의견도 간혹 있다.
온라인 상에선 벌써 패러디도 등장하고 있다. 술집, 노래방, 등산 등에 다녀온 일상을 먼저 공개하며 "나도 죄인인가"라며 반문하고 있는 것. 이 사안은 연예인 관련 '논란' 보도 가운데, 가장 적은 호응을 얻은 케이스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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