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린'(이재규 감독)과 '표적'(창감독)이 활기를 찾은 극장가의 5월 흥행을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30일 나란히 개봉하는 이 두 작품은 크게 배우와 장르의 격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원톱무비가 아닌 쓰리톱 주연 영화로 '배우 대 배우'가 큰 관전 포인트다.
'역린'은 정조 즉위 1년, 왕의 암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24시간을 그린 작품. 영화의 모티프는 1777년 7월 28일에 벌어진 정유역변이다. 영화는 정조 암살이라는 카운트 다운에 맞춰 그 흐름에 따라간다.
'표적'은 의문의 살인 사건에 휘말린 남자 여훈(류승룡)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그와 위험한 동행을 하게 된 의사 태준(이진욱), 그리고 이들을 쫓는 두 형사가 펼치는 36시간 동안의 추격을 담았다. 프랑스 영화 '포인트 블랭크'를 한국 정서에 맞춰 리메이크 했다.

영화는 각각 현빈, 류승룡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사실 영화는 단순한 원톱 드라마가 아니다. 두 작품 모두 큰 3명의 인물들과 여러 군데 배치된 조연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는 공통점이 있다.

- 현빈 vs 류승룡
3명의 주인공 속 그래도 중신 인물은 현빈과 류승룡이다. 둘 다 감정을 표면 위로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군 제대 후 '역린'으로 컴백을 알린 현빈은 기대에 부응한다. 사도세자의 아들. 끊임없이 암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는 젊은 왕 정조는 현빈을 만나 새로운 그림이 그려졌다.
왕으로서의 무게감을 지니면서도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암살 위협에 온 감각을 살려놓은 이 예민한 인물은 현빈에게서 '등근육'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섬세하게 잘 살려진 근육, 날카롭게 느낌을 달리하는 눈빛 등으로 표현됐다. 감정 표현의 폭이 크지 않아 다양한 표정이 불가능함에도 그의 눈빛과 동작에서 고통, 불안, 초조, 슬픔, 분노 등이 색깔을 달리하며 드러난다. 차분한 대사 처리와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류승룡은 '표적'을 통해 어떤 장르에서도 연기 잘 하는 배우임을 보여준다.
극 중 갑자기 의문의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 여훈으로 분한 그는 모든 감정을 안으로 삭히고 절제하면서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살기 넘치고 독기 어린 눈과 터질듯 상기된 붉은 얼굴 속 포효하는 표정이 강렬하다. 중년의 액션. 몸놀림은 가볍고 정서는 묵직하다.

- 정재영 vs 유준상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 이어 '역린'을 통해 비수기의 왕이 된 정재영은 '역린'에서도 묵직한 연기력으로 무게를 더한다. 정재영은 관객들에게 그 연기력에 대한 신뢰감으로 편안함을 주는 배우다. 그가 분한 상책은 정조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하며 왕의 서고를 관리하는 내시이지만 엄청난 비밀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사실 '역린'은 정조의 이야기가 아닌 상책의 이야기란 말이 있을 정도로 상책은 드라마틱한 캐릭터다. 상책과 정조의 브로맨스도 영화의 큰 정서를 담당한다.
유준상은 '표적'의 숨겨진 주연이다. 광역수사대 경감 송반장은 유준상 특유의 여유롭고 어느 순간에도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능글능글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지만, 한 순간 영화 '레옹'의 게리 올드만을 능가하는 광기로 관객들에게 소름을 안긴다. 워낙 강렬해 여훈이 묻힐 위험이 있었지만 오히려 류승룡과 유준상은 함께 있을 때 시너지를 낸다. 유준상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면 그것에 부응할 것이다.

- 조정석 vs 이진욱
'역린'의 삼각형 구도에서 현빈-정재영에 이어 한 꼭지점은 조정석이 차지한다. 조정석은 극 중 어려서부터 잔혹할 킬러로 길러진 살수로 극 중 유일하게 러브라인을 갖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배우들이 부러워했던 역인 만큼 '멋있음'을 담당한다. 무협 액션같은 활극을 펼치면서도 애틋한 멜로 감성도 선보인다. 보는 이에 따라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다.
이진욱은 '표적'에서 아내를 구하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태준을 연기하며 달리고 소리지르고 우는 등 온갖 고생을 다한다. 여훈보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동정심을 자아내지만, 이진욱 특유의 훈남 포스는 여전하다. 사실 원작처럼 이 캐릭터를 중심으로 따라가는 영화였으면 어떨까,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류승룡과 유준상에 비해 무난하지만 제 몫은 해 낸다.

- 김성령 vs 김성령
5월 극장가에서 흥미로운 여배우는 김성령이다. 그는 이 두 작품에 모두 등장한다. '역린' 속 김성령은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로 분해 정순왕후 한지민과 할퀴며 모성애를 발휘한다. 많이 보던 모습이지만 여전히 뭉클하다. 하지만 진짜 재미있는 모습은 '표적'에서다. 욕을 하고 담배를 피고 남자를 때려잡지만 본연의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여형사의 오리지널 타입인 듯 하면서도 이를 살짝 살짝 비껴가는 모습이 재미있다. 두 화제작에 모두 등장하다니. 김성령이 대세긴 대세인가 보다, 를 느끼게 해 준다.
- 조재현 vs 진구
영화의 숨겨진 히든 카드들이 있다. 조재현과 진구다. '역린'에서 비밀 살막에서 살수를 기르는 광백 역을 맡은 조재현은 상상과 현실을 결합한 듯한 인물. 그가 나올 때는 한 순간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렇기에 같은 사극이라 해도 KBS 1TV '정도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강렬한 사투리 때문에 어떤 대사인지 정확히 안 들린다는 말도 있으나, 그가 하는 대사 하나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고 싶은 마음이다.
'표적'의 진구는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배우라고 말할 정도로 새롭다. 극 중 틱 장애를 가진, 사건의 중심에 있는 청년 역할을 맡은 진구는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미친 존재감을 제대로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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