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향한 정의윤의 후회...그리고 다짐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4.04.28 13: 01

“어떡하죠. 이제 진짜 감독님 떠나셨어요.”
LG 외야수 정의윤(28)은 지난 26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3일전 자진사퇴를 결심한 김기태 감독이 이날 선수단에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떠난 것이다.
김 감독과 이별 후 정의윤은 “감독님이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알았다. 그래도 감독님이 다시 돌아오실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감독님은 감독님답게 짧고 굵게 인사하고 떠나셨다”며 “감독님이 계실 때 잘했어야했는데...다시는 이런 감독님은 만나지 못할 것이다”고 힘없이 말했다.

LG 2군 감독 시절을 포함해 지난 3년 동안 김 감독은 정의윤을 부단히 신경 썼다. 강한 정신력을 강조하기 위해 취재진과 덕아웃 인터뷰 중 종종 정의윤을 불러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임찬규와 가위바위보를 시켜 타석에서 상대 투수의 심리를 읽으라는 주문도 했다. 전날 경기서 찬스를 놓치면 “타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려야 한다”며 집중력을 강조했다. 경기 전 김 감독과 1대1 레슨을 가장 많이 한 이도 정의윤이었다. 매년 김 감독의 머릿속에는 ‘정의윤의 성장’이 박혀있었다.
하지만 정의윤은 2012년과 2013년 스프링캠프서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고, 100% 훈련을 소화하지 못했다. 타격 메커니즘, 투수와 볼카운트 싸움 등 보완해야 할 게 많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김 감독과 김무관 타격코치가 유난히 오랫동안 정의윤을 잡고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김 감독은 언제나 정의윤에게 “넌 잘 될 것이다. 두고 봐라”며 긍정적인 마음을 심었다.
정의윤의 잠재력은 지난해 5월부터 7월 중순에 대폭발했다. 특히 5월 한 달 동안 타율 3할7푼6리 11타점 OPS .941로 LG의 공격을 이끌었다. 정의윤이 4번 타순에서 맹타를 휘두르자, LG는 1번 타순부터 9번 타순까지 쉬어갈 곳이 없어졌다. 자연스레 팀 성적은 치솟았고 단숨에 하위권에서 상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당시 김 감독은 “멈추지 마라. 타격 주요 부문 5위 안에 네 이름이 올라갈 때까지 만족하면 안 된다”며 정의윤으로 하여금 자세를 다잡게 했다.
아쉽게도 정의윤의 활약이 시즌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상대 투수들이 정의윤의 약점을 찾아 집중 공략했다. 3할을 훌쩍 넘었던 타율도 8월 중순부터 2할대로 내려갔고 타율 2할7푼2리로 2013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규정 타석을 채운 것과 억대 연봉자가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정의윤은 2013시즌이 끝난 후 곧장 일본 고치 마무리캠프에 나섰다. 꾸준해지기 위해 신예 선수들 속에서 땀을 흘렸다. 이듬해 1월 중순 스프링캠프 또한 부상 없이 제대로 소화했다. 2014시즌을 앞둔 시범경기서 타율 4할2푼9리 4홈런 10타점 OPS 1.377로 상대 마운드를 초토화시켰다. 정의윤의 시대가 마침내 다가온 것 같았다.
그런데 LG도, 정의윤도, 막상 시즌이 시작하자 삐걱거렸다. 팀은 투타 밸런스가 맞지 않았고, 정의윤도 안 좋았을 때의 버릇이 나오며 시범경기와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18일에는 타율이 1할대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정의윤을 엔트리서 제외시키지 않았다. 성적에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중심타순에 정의윤을 배치했다. 김 감독은 정의윤이 지난겨울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잊지 않았다.
김 감독의 판단은 적중했다. 정의윤은 지난 19일 대전 한화전부터 27일 잠실 KIA전까지 8경기 연속 안타를 치고 있다. 타율도 급상승, 3할8리로 올라갔다. 그러나 김 감독은 이미 23일 자진사퇴로 팀을 떠났고, 정의윤은 시즌 초반 자신의 부진이 김 감독을 떠나게 했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의윤은 27일 잠실 KIA전서 올 시즌 첫 3안타 경기를 달성한 후 “감독님이 계셨을 때 이렇게 잘 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고 죄송하다. 감독님이 기회를 많이 주셔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난 감독님이 계실 때 오히려 더 못했다. 감독님이 1대1 레슨을 엄청 해주셨는데 지금 그게 나오고 있어서 더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의윤은 김 감독의 지도를 잊지 않고 정진하는 게 김 감독에게 보답하는 일이라 믿었다. 김 감독은 정의윤의 마음 깊은 곳에 무겁게 자리했던 ‘홈런 욕심’을 지운 장본인이다. 정의윤은 “주위에서 옛날부터 홈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니까 나도 모르게 스윙이 커지고 급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안타를 치다보면 홈런도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타점에 집중하겠다. 감독님은 떠나면서도 앞으로 우리를 다 지켜볼 거라고 하셨다. 감독님 말씀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점을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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