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법정 드라마를 표방하는 드라마는 한결 같이 두가지로 분류됐다. 법정에서 사랑을 논하는 로맨스 드라마이거나, 아니면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꽤나 머리가 아픈 장르 드라마였다. 이런 아쉬움을 날려버릴 법정 드라마 한편이 탄생했다. 장르 드라마로서의 전문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쉽게 접근하며, 귀여운 로맨스까지 잊지 않았다. 바로 MBC 새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의 시작이 그랬다.
지난 30일 첫 방송된 ‘개과천선’은 ‘골든타임’, ‘산부인과’를 통해 사실적인 장르 드라마를 만들었던 최희라 작가의 신작. 병원이 아닌 법정으로 배경을 옮긴 최 작가는 밀도 있는 법정 사건을 배치하며 첫 방송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쳤다.
이 드라마는 거대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인 김석주(김명민 분)가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사건을 수임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휴먼 법정드라마. 석주와 그를 고용한 로펌 대표 차영우(김상중 분)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뢰인의 법정 승리를 이끄는 변호인 집단에 살고 있다. 석주와 영우는 죄가 있을지언정 무죄를 만들 수 있도록 물밑작업을 하고, 반박 증거를 만들거나 불리한 증거를 은폐할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이들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관계돼 있는 사건 당사자들과 접촉하는 과정은 결코 선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악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의롭지는 않은 현실에 있을 법한 행위들이 드라마를 지배했다. 접근 방식은 현실적이었다. 판타지를 배제한 채 세밀한 사전 조사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였다. 이를 흡인력 있게 다룬 연출 역시 '보고 싶다', '스캔들' 공동 연출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 받은 박재범 PD다웠다.
법을 비롯해 우리 사회 안전망의 허점이 드라마 곳곳에 묻어나며 이 드라마가 정의 구현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는 점을 예고했다. 아직은 필수불가결한 이유로 악에 가까운 인물로 표현되고 있지만, 사고 이후 진짜 변호사로 거듭나는 석주의 이야기 속에서 이 드라마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인 인간애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 방송만 봤을 때 ‘개과천선’은 에이스 변호사 석주와 정의감이 넘치는 인턴 이지윤(박민영 분)이 만드는 조화가 아직 로맨스가 시작이 안됐는데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석주와 영우의 관계, 그리고 인물 성격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드라마 속 또 다른 드라마인 법정 이야기는 드라마의 주제의식과 얽히며 흥미를 자극했다. 최 작가가 ‘산부인과’, ‘골든타임’에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통해 주인공들의 성장과 갈등, 그리고 화해를 다룬만큼 이번 ‘개과천선’에서는 법정 사건들이 그 장치를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법정 드라마가 아닌 인간애를 다루겠다는 기획의도대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등장할 다채로운 법정 사건들이 장르 드라마의 풍성한 재미를 책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숨가쁘게 펼쳐지는 사건 속에서 틈틈이 등장하는 석주와 지윤의 로맨스 조합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극과 극의 성격인 두 사람이 첫 방송에서 펼친 좌충우돌은 드라마의 효과적인 강약 조절의 배경이 됐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 김명민과 김상중, 두 선배들 사이에서 안정적인 캐릭터 소화력을 뽐낸 박민영, 개성 강한 조연들까지 갖춘 ‘개과천선’이 첫 방송의 흥미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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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천선’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