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가 2진급 선수들을 기용하는 고육책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전북 현대는 지난달 30일 오후 광양축구전용구장서 열린 2014 하나은행 FA컵 32강서 전남 드래곤즈와 호남 더비를 치렀다. K리그 클래식 9라운드(전북 2-0 승)에 이어 올 시즌 두 번째 만남이었다. 후반 38분까지 1-1로 팽팽하게 맞섰다. 전반 42분 최보경의 헤딩 선제골로 앞서갔지만 전반 추가시간 박준태에게 만회골을 허용했다. 승리의 여신은 결국 전북에게 미소를 지었다. 주인공은 외국인 공격수 카이오였다. 전북은 경기 막판 터진 카이오의 2골(페널티킥 1골)에 힘입어 3-1로 승리하며 16강행 티켓을 따냈다.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됐다. 전남은 올 시즌 리그 4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날 스테보, 이종호, 한영민, 안용우 등이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지만 1.5군 선수들이 독기를 잔뜩 품고 나왔다. 하석주 전남 감독도 경기 전 "'절박함을 안고 들어가라. 이 경기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뛰어라'고 강하게 동기부여를 줬다"면서 "베스트로 맞붙어서 졌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일의 선수들을 넣었다"며 전현철 심동운 박준태 등에게 기대감을 보였다.

전북은 이날 고육책으로 2진급 선수들을 내세웠다. 골키퍼 권순태를 포함해 2~3명을 제외하곤 모두 로테이션 멤버이거나 올 시즌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던 이들이 선발 출격했다. 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를 병행하고 있는 전북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이동국 이승기 레오나르도 한교원 등 주전 선수들에게 휴식을 부여한 채 원정길에 올랐다. 대신 전북 유니폼을 입고 데뷔전을 치른 유스 출신 이주용을 비롯해 이승렬 권경원 이강진 등이 기회를 잡았다.
그렇다고 쉽게 물러서지는 않았다. 이재성 마르코스 이상협 등을 교체 명단에 대기시켰다. 선발 출격한 백업 선수들에게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최 감독은 "모두 능력 있는 선수들이다. 기량은 백지 한 장 차이"라며 "조직력은 미흡하겠지만 팀에서 요구하는 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음을 보였다.
특히 이승렬과 '신인' 이주용에게 거는 기대감이 컸다. 최 감독은 "이승렬은 경기를 많이 못 뛰어서 감각이 떨어져 있지만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면서 "이주용은 전주영생고 출신으로 왼쪽 윙을 본다. 오늘이 전북 데뷔전"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또 보기 드물었던 최보경-권경원 중원 조합에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최 감독의 전략은 적중했다. 기대대로 이들은 이동국 이승기 레오나르도 등이 빠진 전북의 앞선을 이끌었고, 김남일 정혁 이재성이 빠진 중원을 조율했다. 전반 초반부터 줄기차게 뛰었다. 신인 이주용은 의욕이 넘쳤다. 특히 날카로운 왼발은 세트피스 시마다 전남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지난해 U리그 권역 전체 득점왕 출신답게 볼 컨트롤, 드리블, 과감성 등 신인치곤 꽤 날렵한 몸놀림을 선보였다. 이주용은 깜짝 데뷔전을 치르고 난 뒤 "마냥 행복하다. 데뷔전인데 팀이 승리해 기분이 좋다"면서 "감독님을 비롯해 형들이 '자신있게 하라'고 조언해 준 덕분에 부담 없이 편하게 경기를 뛰었다"며 해맑게 웃었다.
올 시즌 리그 4경기 출전에 그치고 있는 이승렬은 무언의 시위를 벌이는 듯했다. 최전방의 카이오 아래에 위치해 섀도우 스트라이커 역할을 소화한 이승렬은 자신감 있는 드리블 돌파와 슈팅력을 뽐냈다. 1-1로 팽팽하던 후반 막판엔 질풍같은 드리블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승리의 디딤돌을 놓았다.
더블 보란치로 출격한 최보경과 권경원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전반부터 연신 날카로운 중거리 슈팅을 뿌려대던 최보경은 결국 전반 42분 헤딩 선제골을 기록하며 리드를 이끌었다. 권경원도 안정된 볼배급으로 향후 활약을 기대케 했다.
가장 큰 성과는 브라질 출신 공격수 카이오의 2골이었다. 이동국의 백업으로 활약하고 있는 카이오는 올 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단 2골에 그쳤는데 이마저도 모두 페널티킥 골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경기 막판 페널티킥 결승골을 뽑아낸 카이오는 후반 추가시간 쐐기골까지 터트렸다. 아크 서클 근처에서 빨랫줄 같은 왼발 중거리 슈팅을 골문 구석에 꽂아넣었다. 본인의 한국 무대 첫 필드골이었다. 전남의 백전노장 골키퍼 김병지도 손 쓸 수 없는 환상적인 골이었다. 카이오는 경기 후 "2골을 넣어서 정말 기분이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원했던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주전 선수들의 체력은 비축했고, 백업 선수들의 몸도 끌어올렸다. FA컵 16강 진출을 덤이었다. 전북은 향후 살인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오는 5월 3일 오후 2시 수원과 리그에서 만나고, 6일 오후 4시에는 포항과 ACL 16강 1차전을 치른다. 하지만 지금의 기세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트레블 달성도 꿈만은 아니다. 전북의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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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용 / 전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