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타자들에게 주문을 한 가지 했다. 바로 "쉽게 죽지 말라"는 것이다.
넥센은 지난해부터 리그 최고의 장타자들을 가진 거포 군단이다. 박병호, 강정호, 이택근, 김민성, 이성열 등이 홈런을 날리는 재미가 타 구단보다 쏠쏠하다. 그러나 염 감독에게는 반대로 그것이 고민이 된다. 염 감독은 최근 "홈런이야 당연히 좋다. 하지만 홈런이 나올 확률을 생각하면 타자들이 너무 쉽게 휘둘렀다"고 말했다.

염 감독의 야구는 세밀하다. 팀 컬러인 거포 야구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들의 디테일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염 감독은 "내가 타격감이 안좋을 때는 그냥 죽지 말고 어떻게든 다음 타자에게 찬스를 넘겨줘라. 우리 팀에는 뒤에서 잘 쳐줄 수 있는 타자들이 많다"고 선수들에게 당부했다.
그 때 강조하는 것이 '볼넷 한 개'다. 염 감독은 "볼넷이 없어 4타수 1안타가 되면 타율이 2할5푼이지만, 볼넷을 얻고 3타수 1안타가 되면 타율이 3할3푼3리가 된다. 그 한 타석의 차이가 나중에는 본인 성적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2할 타자와 3할 타자는 타력에서도 나오지만 선구안에서도 나올 수 있다는 셈이다.
4번타자 박병호는 시즌 초반 기대보다 낮은 타격감에 애를 태웠지만 2일 기준 25경기에서 21개의 볼넷으로 타율 2할8푼6리보다 훨씬 높은 4할5푼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다. 덕분에 김민성, 유한준 등 박병호 뒤에서 치는 타자들의 타점이 높아지는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염 감독은 "(박)병호는 타격감이 안좋다고 마구 휘두르는 타자가 아니"라며 만족했다.
넥센 타선은 올 시즌 팀 타율 2할8푼7리를 기록하며 해당 부문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마운드가 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타력의 힘으로 팀 성적도 16승9패, 리그 단독 선두를 질주 중이다. "방망이에는 슬럼프가 있지만 눈에는 슬럼프가 없다"는 염 감독의 주문이 넥센 타자들의 세밀함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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