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24)의 투란도트를 보기 위해, 그리고 김연아가 투란도트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이제 막을 내린다. 모든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곡에 맞춰 연기하겠다는 김연아의 다짐이 아이스쇼의 은반 위를 수놓을 예정이다. 오는 4일부터 6일까지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특설 아이스링크에서 열리는 삼성 갤럭시★스마트에어컨 올댓스케이트 2014에서 김연아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투란도트를 선보일 예정이다.
1926년 초연된 이후 전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한국에서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1972년 10월 국립오페라단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후 푸치니의 3대 오페라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과 함께 변함없이 관객들을 찾고 있는 명작 오페라이기도 하다.

전세계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오페라답게,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휴대폰 판매원에서 세계적인 오페라 스타로 변신한 폴 포츠가 자신의 인생을 바꾼 노래가 바로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였다. '아무도 잠들지 말라'가 원 뜻이지만 어느새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제목이 더 익숙해진 이 곡은,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폴 포츠의 감동적인 실화와 함께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오페라의 스토리가 주는 매력과 우아하고 화려한 음색이 더해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스케이터들 사이에서도 단연 가장 인기있는 곡 중 하나다. '피겨 여제' 카타리나 비트, '토리노의 여왕' 아라카와 시즈카, 미국의 유망주였던 낸시 케리건 등 여자 싱글 스케이터들은 물론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제이슨 브라운,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페어 부문 은메달리스트 팡칭-통지안 등 남녀와 페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스케이터들이 이 곡을 프로그램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음악이 있는데 그런 음악 중 하나였다"고 '공주는 잠 못 이루고'에 대한 감상을 털어놓은 김연아가 은퇴 후 갖는 아이스쇼 무대에서야 이 곡을 은반 위에서 펼칠 수 있었던 이유다. 피겨 불모지인 한국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다른 선수들보다 한발짝 더 나아간 선곡과 안무가 필요했다. 깊은 인상을 남겨주고 정상을 다투기 위해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선택할 수 없었다.
김연아는 아이스쇼를 앞두고 2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피겨선수들이 많이 쓰는 흔한 음악 중 하나이기 때문에 선수 때는 이 곡을 쓰지 못했다"며 "현역 은퇴무대에서 어떤 곡을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은퇴무대에서 한번 이 곡을 해보자고 생각해서 골랐다"고 선곡 이유를 밝혔다. 홀로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했던 살얼음판 같은 무대를 벗어난 김연아가 오랜 기다림 끝에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곡에 맞춰 연기하게 된 셈이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외에도 다른 여러 음악이 섞여있다. 데이빗 윌슨에게 멋진 안무를 받게 됐는데 이번 공연에서 완벽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며 웃은 김연아. 안무가 윌슨 역시 "아이스쇼에서 사용하되 김연아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내자는 의미로 이 곡을 골랐다.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끝내고 은퇴하는 무대이기 때문에 김연아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의 부담을 덜어주고 최고의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안무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Dilegua, o notte! Tramontate, stelle!(사라져라 밤이여, 희미해져라 별이여) All'alba vincero! Vincero! Vincero!(새벽이 되면 나는 승리하리라, 승리하리라, 승리하리라)'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고 한 선곡은 아니라지만, 확실한 '피겨여왕'으로 은반 위에 선 김연아에게는 퍽 어울리는 가사가 아닐 수 없다. 아쉽게도 본 공연에서는 가사가 없는 버전이 흘러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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