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에 충실한 짜임새 있는 대본을 입체적으로 펼쳐내 놀라운 흡인력을 발휘하는 연기 고수들의 집합소, 정통 사극 '정도전'이 연일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난 3일 방송된 KBS 1TV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이성계(유동근 분)와 정몽주(임호 분)의 숨 막히는 기싸움이 시선을 끌었다.
이날 이성계와 정몽주는 사전개혁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이날 이성계는 자신과 이인임(박영규 분)이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정몽주에 "말조심해라. 주둥이만 뻥긋하면 백성, 백성 하다가, 지 땅 뺏으려고 하면 반대하는 개자식들 모가지 뽑아 버리라고 했다. 그게 뭐 잘못됐냐"고 소리쳤고, 정몽주는 "그게 잘못된 거다. 어찌 대감이 백성들에 다가가려 하는 거냐. 백성에 다가가 달래주고 보듬어줄 분은 대감이 아니라 이 나라의 군주다"라며 군주의 자리에 오르려는 이성계를 부인했다.

특히 밀폐된 방 안에서 독대한 이성계와 정몽주의 설전은 시청자의 숨을 죽이게 하는 몰입도를 발휘했다. 묵직한 이성계의 포효와, 그에 밀리지 않는 정몽주의 기개가 정면 충돌한 이 장면에서는 어느 한 쪽도 꺾일 수 없는 정치적 신념을 품은 대쪽같은 두 사람의 대결이 눈에 보일 정도의 강렬한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그간 다양한 정통 사극을 통해 강인한 왕을 연기했던 유동근은 시청자에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기대치를 넘어서는 명연기를 보였다. 거칠게 분노를 쏟아낸 후에 홀로 분을 삭이느라 얼굴 근육을 파르르 떠는 섬세함이 가미된 연기는 또 하나의 명장면을 추가했다는 반응. 또한 임호에게 다양한 작품 속 유약한 이미지가 주로 연상됐다면, 최고의 충신인 정몽주로 분한 그는 그간 미처 몰랐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내공을 유감없이 폭발해내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주 이인임 역 박영규가 시청자에 뜨거운 호평을 얻으며 퇴장한 바 있다. 역사적, 정치적 시각에 따라 악역으로 보일 수 있는 이인임이었지만, 박영규의 진정성 넘치는 연기는 이인임의 행동에 개연성을 풍성하게 더하며 시청자를 공감하게 했다. 이에 이인임은 현재 이름만 언급되는 상황에서도 박영규의 이인임이 한 공간에 있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다.
이에 역사적인 사실에 따라 정몽주 역 임호도 곧 퇴장할 전망이지만, 아쉽지만은 않다. 연기신들이 맡은바 최고의 명연기를 펼치고 퇴장한 자리에는 그의 존재감이 시청자의 뇌리에 깊게 남아 짙은 잔상을 남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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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