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독’ 송승헌, 역전 찬스 만루작전 성공할까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5.04 07: 31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송승헌이 스승의 날 야심차게 벗는다. 이달 15일 개봉하는 격정 멜로 ‘인간중독’(감독 김대우)을 통해서다. 항간에 ‘색,계’를 뛰어넘는 노출신이 포함됐다고 해 말초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일단 성공한 듯 보인다.
 데뷔 후 첫 전라 연기라는데 그것도 모자라 이 방면 최고 ‘선수’와 만나 기대를 높인다. ‘정사’와 ‘스캔들’을 쓴 뒤 ‘음란서생’ ‘방자전’을 연출한 노련한 감독이 눈요깃거리에만 시간을 허비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관심은 달달한 카페라떼 같은 송승헌이 유분기를 빼고, 샷 추가한 에스프레소 상남자로 안착했을 지에 모아진다.
 송승헌이 ‘인간중독’을 선택한 건 아마도 만루 작전 비슷한 심리일 것이다. 주자 1, 2루 상대는 거포 4번 타자. 이 선수를 거르고 5번과 승부해 내야 땅볼을 유도한 뒤 더블 플레이를 시키고 이닝을 끝내야 한다. 무사히 이 위기만 넘기면 경기 흐름은 저절로 우리쪽으로 넘어오게 돼있다. 만루 작전은 ‘난 더 이상 잃을 게 없고, 여기서 밀리면 모든 게 끝’이라는 독한 배수진인 것이다.

 서른아홉, 운이 좋으면 앞으로 2~3년 더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할 수 있겠지만, 그 뒤론 비자발적 실업 상태가 시작될지 모른다는 직업인으로서의 불안감이 엄습했을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결심했을 송승헌의 고민이 여기저기서 읽힌다. “난생 처음 카메라 앞에서 수영복을 벗은 뒤 쌀가마니 같은 묵직한 짐을 던져버린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다”는 인터뷰와 첫 예능 프로 출연 등. 아직은 ‘미니 1번’ 배우에 안주할 수 있지만,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도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 최근 만족스럽지 못했던 시청률이 생선 가시처럼 마음에 걸렸을 테다. 여기에 같은 스톰 모델로 시작한 친구 소지섭과 권상우의 스크린 활동 역시 나를 비추는 냉혹한 거울로 작용했을 것이다.
 ‘활동 기간과 비례하지 않는 연기력’, ‘너무 잘 생겨 얼굴에 연기가 가려지는 배우’ 등 송승헌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한석규 이병헌의 목소리만 가졌어도 벌써 충무로를 평정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다. 부인할 수 없는 공통된 지적 중 하나는 대사 전달력. 가령 ‘달콤한 인생’ 후반부에서 이병헌이 보스 김영철에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라고 조용히 따져 묻다가 폭발하는 장면을 과연 송승헌이 해낼 수 있을까? 아직까진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아무리 눈의 실핏줄을 터뜨리고 고성을 내질러도 ‘어, 저 사람 열심히 연기하네’라고 느껴지면 그건 실패다. 웃고 있어도 상대를 눈물 나게 하고, 멍한 표정만으로도 관객을 무장해제 시키는 연기야말로 진짜 연기다. 흔히 ‘진정성’이라고 표현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송승헌은 ‘가을동화’ 이후 우리를 마음껏 울리거나 웃기는데 재능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기계적인 연기와 매너리즘에 갇힌 폭 좁은 배우란 뜻은 아니다.
배우의 연기가 무미건조하고 관습적으로 와 닿는다면, 그건 재료와 레시피를 잘못 구성한 연출자의 공동 과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송승헌은 영화 ‘숙명’을 제외하고 그동안 카페라떼 왕자님 이미지를 우려먹으려 한 연출자의 의도를 잘 알면서도 애써 모험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익숙함에만 기대온 게 사실이다. 편하고 익숙한 건 발전을 저해한다. 송승헌 보다 먼저 비슷한 고민을 한 장동건의 지난 행보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배우를 흠모한 TV 스타 장동건은 한예종 늦깎이 입학과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 출연하며 조금씩 조각 같은 외모라는 거추장스런 수식어를 떼어낼 수 있었고 지금도 그 노력은 진행형이다.
 언젠가 김혜수로부터 ‘배우는 기다려주면 반드시 대중에게 보답하는 존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 송승헌도 날마다 다녔던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 모처럼 마주친 ‘비보호 좌회전’ 표지판 앞에서 쫄지 말고 핸들을 꺾길 바란다.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면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풍경이 펼쳐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중독’의 흥행은 송승헌이 안 쓰던 근육을 얼마나 썼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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