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뚝이' 신종훈, "AG, 매경기 결승전 각오, 金 조준"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14.05.05 07: 01

물러설 곳 없는 사각의 링. 주어진 시간은 9분. 1라운드 3분씩 3번의 전투를 치르고 나면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굵은 땀방울이 연신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한국 복싱의 미래에서 이제는 어엿한 고참이 된 신종훈(25, 인천시청)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서 금빛 펀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태릉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를 만났다.
▲ 환희 그리고 좌절
라이트플라이급(49㎏)의 신종훈은 한국 복싱의 기대주였다. 지난 2009년 첫 국제대회였던 세계선수권서 깜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약관의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은 독이 됐다. 이듬해 광저우아시안게임서 유력 금메달 후보로 거론됐지만 8강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이를 악물었다. 2011년 세계선수권서 당당히 은메달을 따냈다. 2012 런던올리픽 출전권도 거머쥐었다.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조용히 그날을 기다렸다. 첫 올림픽 무대인 런던으로 향했다. 대진운도 좋았다. 32강을 부전승으로 통과했다. 8강까진 한 수 아래의 상대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첫 경기였던 16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2라운드까지 9-7로 앞섰지만 3라운드서 역전을 허용하며 14-15로 판정패했다. 허탈했다. 4년의 준비와 꿈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정말 죽고 싶었다. 운동도 하기 싫어서 한 달 정도 쉬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3달 정도 훈련을 안하고 대회에 나갔다. 올림픽이 너무 큰 대회다 보니 '질 수도 있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원래 술도 안 좋아하는데 많이 먹었다."
힘든 순간 희망의 끈을 건네준 이들이 있다. 신종훈은 "방황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먼저 알아봐주셔서 정신이 확 들었다"면서 "지난해 12월 후배에게 패했던 것도 마음을 다잡은 계기였다"고 했다.
신종훈은 또 "주위에서 '나이도 먹고 이제 갈 때가 됐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때였다. 하지만 김원찬 인천시청 전무님은 나를 더 다독여주시고 챙겨주셨다. 그 때 정말로 힘들었는데 진심으로 감사했다. 제대로 정신을 차린 계기였다"고 은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이옥성 코치와 여자친구
"엄청 잘해주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쓴 일기가 있는데 제일 앞면에 '이옥성♥'라고 적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존경하고 닮고 싶은 선수였다."
신종훈에게 이옥성 코치는 특별한 존재다. 존경하는 선수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둘은 대표팀에서 선수로 호흡을 맞춘 적은 없다. 신종훈은 "아쉽게도 국가대표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은 없었다. 코치님이 대표팀에 있었을 땐 내가 없었고, 내가 선수촌에 들어왔을 땐 코치님이 없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만났다"고 달뜬 마음을 전했다.
신종훈과 이옥성 코치의 복싱 인생은 똑 닮았다. 이옥성 코치는 지난 2005년 세계선수권 플라이급(51kg)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서는 시상대 위에 서지 못했다. 신종훈도 마찬가지다. 세계선수권 메달은 2개나 있지만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서 번번이 좌절했다.
"코치님은 항상 '나처럼 되지 말라'고 말하신다. 그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더 독하게 해라', '후회 없이 해라', '나는 지금 선수가 아니지만 제자인 네가 내 꿈을 대신 이뤄줬으면 좋겠다'."
든든한 지원자는 또 있다. 결혼을 약속한 동갑내기 여자친구 김혜인(25)씨다.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사격 선수로 인천아시안게임 출전을 노리고 있다. 신종훈은 "혜인이도 열심히 훈련하고 있다. 아직 선발전이 끝나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에 같이 나갈 수도 있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또 한 번 스포츠 스타 커플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 태극마크와 아시안게임 금메달
신종훈에게 태극마크는 어떤 의미일까. "20살 때 국가대표 1진이 된 뒤 선수촌에 있은지 6년이나 지났다. 그런데 예전보다 지금 더 가슴이 뛴다."
이유는 있다. 신종훈은 "과거에는 태극기 문양이 들어간 국가대표 옷을 많이 받아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복싱 인기가 다른 종목에 뒤지다 보니 태극마크의 중요성을 더 많이 느꼈다"면서 "선수들이 잘하지 못해 인기가 떨어지면서 협찬을 못 받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난다. 우리가 잘하면 스폰도 많이 들어올 것"이라며 이를 악물었다.
무대는 만들어졌다. "한 판 한 판 결승전이라는 각오로 무조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싶다.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내가 아니더라도 남자 대표팀 10명 중 3명 정도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종훈은 지난 2일 전지훈련 겸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며칠 전까지 그의 모바일 메신저 문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가슴에 품었던 무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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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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