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제패한 ‘역린’, 현빈부터 복빙까지 햄릿 연기 통했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5.05 07: 22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화제작 ‘역린’(이재규 감독)이 개봉 닷새 만인 4일, 200만 고지를 넘보며 5월 금싸라기 연휴 극장가를 제패했다. 애초 계획에는 살짝 못 미치는 성적이지만, 애도 정국과 개봉 전 언론의 짠 평가, 엇갈리는 호불호 등을 감안하면 제작진과 주연 배우들이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쉴 만한 값진 성취다.
 현빈 등 주연 배우들을 한층 반갑게 한 건 7점대로 상승곡선을 긋고 있는 포털 사이트 관람 후 평점이다. 개봉 당일부터 혹평과 1점 폭탄을 던진 네티즌이 너무 많아 경쟁사의 악의적 ‘알바 동원’이 의심됐지만, 제작사와 롯데엔터테인먼트는 이 해묵은 논란에 일체 대응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증거 수집도 간단치 않지만 무엇보다 ‘좋은 영화는 관객이 알아봐준다’는 소박한 기대와 믿음 때문이었다. 이들의 바람대로 관객수가 늘어날수록 ‘역린’의 평점은 6점 초반 대에서 7점으로 서서히 뛰어올랐다. ‘왜 잘 만든 영화에 흠집을 내느냐’며 1점에 맞선 10점이 쏟아진 결과다.
 개봉 전날엔 일부 CGV에서 ‘역린’의 예매가 갑자기 중단되는 석연찮은 일도 발생했다. 몇 시간 만에 정상화됐지만 ‘표적’의 투자사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 간의 미묘한 힘겨루기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역린’이 이렇게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관객의 선택을 받은 건 영화를 둘러싼 일부 우려가 시간이 흐르며 해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역린’은 ‘생각보다 지루하다, 그래서 실망’이라는 일부 평가를 받았다. 기대치가 월등히 높았던 데다 ‘광해’ ‘관상’ 같은 사극 영화와 비교할 때 속도감이 떨어진다는 불평이었다. 이런 디스카운트 요소를 제작사나 감독이 모를 리 없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를 보완하기 위해 평균 15분마다 웃음 포인트를 주자는 안도 나왔지만, 고심 끝에 그런 기계적인 장치를 모두 없앴다. 자객의 살해 위협 때문에 잠조차 편히 잘 수 없었던 비운의 왕 정조의 긴박한 하루를 집중 조명한 ‘묵직한’ 시나리오에 충실키로 한 것이다.
 개봉 후 가장 많은 구설에 오른 정순왕후 역 한지민의 연기도 여러 버전이 있었지만 역시 고심의 결과였다. 감독은 촬영 전 한지민에게 굳이 고어체에 얽매이지 않을 것을 주문했고, 여러 시도 끝에 현대어 대사를 택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지민의 대사와 연기가 다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면 그건 연기 자체의 결함이라기 보단 억양이나 톤에 리듬감과 변화를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지 않은 출연 분량 동안 표독한 정순왕후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려다 보니 캐릭터의 디테일한 톤 앤 매너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재규 감독은 임팩트는 있지만 한지민이 하기엔 너무 분량이 적어 섭외 단계에서 조심스럽게 연락했는데 한지민이 선뜻 출연을 결정해줘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개봉 후 한지민이 본의 아니게 일부 혹평을 받자 자신의 일처럼 괴로워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배우와 작가는 모두 최고였다. 만약 영화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건 모두 제 탓”이라며 책임을 돌리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기대보다 현빈의 출연 분량이 적었다는 불평도 제작진 입장에선 억울했을 대목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갑수-을수의 히스토리, 조정석과 정은채의 멜로가 ‘너무 과한 스토리’라는 뒷말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린’은 애초부터 현빈 정재영 조정석의 쓰리톱 영화로 기획됐고, 현빈도 이 삼각 구도에 매료돼 ‘역린’을 선택했다. 저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던 세 인물의 목숨 건 충돌이 '역린'의 골격이었던 것이다. 정재영이 가세하며 상책의 분량이 더 다듬어지긴 했지만 처음부터 분량은 셋 다 대동소이했다.
 조정석 정은채의 멜로도 편집하고 다시 붙여보길 수십차례 반복했지만, 극 후반부 살수 조정석과 정조의 대결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러닝타임이 길어질수록 회전률이 낮아져 수익성이 떨어지지만,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한 것이다. ‘도둑들’이나 ‘놈놈놈’ 같은 캐릭터가 강조된 영화가 아님에도 ‘역린’은 극장을 나온 뒤에도 많은 인물이 잔상에 남는다. 예사롭지 않은 연출의 결과인데도 거꾸로 이런저런 잡음에 시달린 것 같아 아쉽다.
 드라마 스타 PD로 오랜 기간 스크린 데뷔를 준비해온 이재규 감독은 누구보다 영화에 대한 감각과 애정이 많았고, 그래서 조단역들까지 적절 수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관객들의 뇌리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영화의 주요 플롯을 담당한 어린 나인 역 복빙에 대한 호평이 많은 것 역시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혜경궁 홍씨의 첩자 노릇을 하던 어린 소녀가 정순왕후의 꼼수에 휘말려 독이 든 차를 혜경궁에게 건넬 때의 표정 연기를 기억하는가. 압권이었고 당분간 쉽게 잊히지 않을 명장면이었다. 감독은 이렇게 ‘다모’ 복빙이까지 엄청난 에너지와 애정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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