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타자는 왼손 투수에게 약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실제 그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왼손 타자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것을 롯데 타선이 보여줬다. 비록 지긴 했지만 김시진 롯데 감독의 향후 타선 운영에도 참고가 될 만한 경기였다.
롯데는 4일 문학 SK전에서 홈런 네 개를 포함, 장단 18안타를 터뜨린 타선의 힘을 앞세워 16-4로 크게 이겼다. 선발 전원 안타, 선발 전원 득점이 보여주듯 타자들이 골고루 잘 쳤다. 그래서 그럴까. 김시진 감독은 4일 경기의 라인업을 5일에도 그대로 들고 나왔다. 불이 붙은 타자들에 대한 믿음이었다.
사실 의외이기도 했다. 이날 선발이 전날과 던지는 손이 달랐기 때문이다. 전날 SK 선발은 사이드암 백인식이었다. 좌타자들이 비교적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유형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왼손 투수 김광현이었다. 김시진 감독의 성향을 생각하면 우타자들이 어느 정도 전진배치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전날과 같은 라인업을 밀어붙였다.

이른바 ‘좌우놀이’의 법칙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대다수의 감독들이 따른다. 김 감독도 일반적으로는 그런 성향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감독들이 좋아하는 것은 역시 고정된 라인업이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잘 치는 라인업이 있다면 그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김 감독의 속내도 마찬가지다. 김 감독은 넥센 시절부터 “고정된 라인업이 좋다. 하지만 통계를 고려하면 그렇게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이런 김 감독의 지론이 기존 타자들의 타격감이 좋은 이날 실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성적은 어땠을까. 1회까지만 해도 통계는 맞아 떨어지는 듯 했다. 롯데는 1회 상대 실책 2개에 힘입어 무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좌타자’ 히메네스가 삼진, 또 ‘좌타자’ 박종윤이 병살타로 물러났다. 히메네스는 올 시즌 좌완 상대 타율(.304)이 우완 상대 타율(.429)보다 낮았다. 박종윤(좌완 .200, 우완 .391)은 더 차이가 극명했다. 히메네스는 뺄 수 없다 하더라도 최준석의 이름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후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요약하면 우타자보다 더 좋았다.
상대 선발 김광현이 리그 정상급 투수임을 고려하면 이날 롯데 좌타자들의 성적은 의미가 있었다. 김광현은 이날 5개의 안타를 허용했는데 이중 4개를 좌타자들이 때려냈다. 손아섭은 5회 추격의 솔로홈런을 때렸고 히메네스도 4회 안타를 수확했다. 박종윤은 4회 잘 맞은 2루타를 포함, 김광현을 상대로 2개의 안타를 쳤다. 가장 좋은 타구를 날린 롯데 타자였다. 김문호가 유일하게 안타를 때리지 못했으나 4회 좌전안타가 2루 주자의 아웃 때문에 땅볼로 둔갑한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실상 라인업의 5명 좌타자가 모두 1개 이상의 안타를 때린 것이다.
반면 우타자들의 성적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정훈은 2타수 무안타 1볼넷, 전준우는 3타수 무안타, 황재균은 1타수 무안타, 강민호는 3타수 무안타 2삼진이었다. 오직 문규현이 김광현을 상대로 안타를 쳐낸 유일한 우타자였다. 비록 5-9로 져 싹쓸이에는 실패했지만 롯데로서는 얻을 것이 하나 없는 경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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