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타선에 맛있는 상을 차릴 ‘주방장’을 수소문했던 김시진 롯데 감독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심 끝에 뽑은 주방장들의 음식 솜씨가 제법이기 때문이다. 정훈(27)과 전준우(28)로 이어지는 롯데의 새 테이블세터진이 절반의 성공을 거두며 순항하고 있다.
롯데는 올 시즌 초반 확실한 타순을 짜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외국인 타자 루이스 히메네스가 햄스트링 부상에서 돌아온 뒤 중심타선과 하위타선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는데 테이블세터는 좀처럼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리드오프가 15경기도 채 되지 않아 바뀌었다. 개막 리드오프로 낙점됐던 이승화가 1할9푼1리의 저조한 타율로 제 몫을 해주지 못한 탓이 컸다. 리드오프가 흔들리자 짝을 이뤄야 하는 2번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김시진 감독의 눈에 들어온 선수가 정훈이었다. 정훈은 지난 시즌까지 1번 타순에서 타석에 들어선 경우가 단 네 번밖에 없었다. 주로 2번 혹은 8·9번이라는 하위타선에 위치하던 선수였다. 그러나 정훈의 상승세를 눈여겨본 김시진 감독이 과감한 선택을 내렸다. 그리고 그 짝은 전준우를 붙였다. 전준우 역시 지난해까지는 2번 타순에서 61타석 소화에 그쳤다. 9번(9타석)에 이어 가장 적은 경험이었다. 낯선 자리에 두 선수를 배치한 것이다.

우려가 적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의 선택은 지금까지 성공작으로 귀결되고 있다. 두 선수가 각자의 자리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정훈은 경험이 부족하고 체력적 소모가 많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타율 2할8푼6리를 기록 중이다. 1번 타순으로 옮긴 뒤 타율이 다소 떨어지기는 했지만 롯데에서 가장 좋은 리드오프 대안이 됐다. 전준우는 성적 향상이 도드라진다. 2번 타순에서 타율 3할2푼1리, 4홈런, 12타점을 쓸어 담으며 최근 롯데 타선의 핵으로 자리하고 있다.
두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이자 롯데 타선도 힘이 붙었다. 롯데는 두 선수가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춘 4월 20일 이후 2할9푼6리의 팀 타율을 기록 중이다. 12경기에서 72득점을 올려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방망이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손아섭, 히메네스, 박종윤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이 건재한 만큼 테이블세터가 밥상만 잘 차리면 폭발력 유지가 가능한 구조다. 김시진 감독도 “잘 하고 있는데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라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사자들도 싫지 않은 눈치다. 정훈은 “처음 1번으로 나가라고 했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감독님께서 믿어주셔서 감사하다”라면서 “타석에 많이 들어서다보니 안타 하나로는 타율이 뚝뚝 떨어지더라. 그러다보니 볼넷 등으로 더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시즌 초반 부진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전준우 역시 “몸 상태가 올라오면서 타격감도 같이 올라오고 있다. 정훈이 너무 잘해주고 있어 연결하자는 생각만 하고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괜찮은 두 주방장의 호흡 속에 롯데 밥상의 영양가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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