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의 기본은 투수들이 던지는 강속구에 대한 공포감을 이겨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투수들도 만만치 않은 공포감에 시달리고 있다. 타구에 맞는 부상이 속출함에 따라 두려움을 호소하는 투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몸을 보호하는 보호장비의 대중화가 화제로 떠올랐다.
윤희상(29, SK)은 지난 4월 25일 사직 롯데전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첫 타자 김문호의 타구에 급소 부위를 맞았다.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날 정도로 큰 고통이었다. 김문호의 잘못도, 윤희상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었다. 이 장면을 추후 TV로 봤다는 한 선수는 “끔찍하더라. 투구나 타구에 맞아보지 않은 일반인들은 절대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없다. 웃는 사람을 보니 화가 날 정도였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다행히 큰 부상은 면하고 7일 문학 삼성전에 복귀하는 윤희상은 “당분간 (낭심) 보호대를 찰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실제 5일에는 보호대를 차고 40여 개의 불펜 피칭을 소화하기도 했다. 윤희상은 지금까지 보호대를 차본 적이 없다. 약간은 불편함과 이질감을 느낀다는 것이 윤희상의 설명이다.

이처럼 투수들의 보호대 착용은 그리 대중적인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보호대를 착용하지 않는다. 한동안 착용한 것으로 알려졌던 장원삼(삼성) 역시 2년 전쯤부터는 보호대를 차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이유는 불편함이다. 한 투수는 “한 번 해보기는 했는데 익숙하지 않다 보니 투구 때 다른 느낌이 들더라. 밸런스에 영향을 줄 것 같아서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투수들이 그렇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윤희상과 같은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확률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투수들이 타구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40㎞의 공이 타자 방망이에 제대로 맞는다면 다시 돌아오는 타구의 속도는 180㎞ 이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여기에 투수들은 투구를 완전히 마친 뒤 수비 자세로 전환하기 때문에 미리 대처할 시간이 야수들에 비해 부족하다.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타구가 자신에게 날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이에 김시진 롯데 감독은 “보호대를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김 감독이 뛰던 프로야구 초창기에 비해 타구가 훨씬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선수들이 말하는 불편함에 대해서도 적응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김 감독은 “보호대 팬츠는 허리를 꽉 조여 주는 효과가 있다. 힘을 쓰기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속 선수의 아찔한 상황을 접한 이만수 SK 감독도 “메이저리그의 경우는 선수들은 모두 낭심 보호대를 차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중고교시절부터 장비가 보급이 된다”라고 하면서 “어릴 때부터 보호대를 차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 감독이 뛰던 시절과는 달리 최근 포수들은 낭심 보호대 착용이 일반화되어 있다. 투수들과 야수들도 그런 추세를 따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최근 투수들이 안면이나 머리 부위에 타구를 맞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메이저리그(MLB)의 경우 투수들도 헬멧을 쓸 수 있도록 조치했다. 다만 투구 밸런스 등을 우려한 투수들의 실제 착용률은 '0'에 가깝다. 다만 헬멧까지는 아니더라도 낭심 보호대의 착용은 투수나 야수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리나 정강이에 맞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가는 언젠간 그 공이 치명적인 부위로 향할 수도 있다. 이와 더불어 아마추어 야구에 낭심보호대 지원을 확대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노력도 필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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