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프로야구 선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쪽에 가깝다”
가벼운 부상을 당했거나, 혹은 체력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선수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참고 뛰거나, 혹은 벤치에 직·간접적으로 휴식을 요구하는 방법이다. 어느 쪽이 맞다, 틀리다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열심히 뛰다 자칫 잘못하면 부상이 커지는 수도 있다. 이른바 소탐대실이다. 하지만 류중일 삼성 감독은 “웬만한 부상이면 참고 뛸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의 자리를 뺏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확고부동한 주전선수라고 하더라도 그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선수들은 있기 마련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프로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내 자리니까’라고 방심했다가 다른 선수들에게 밀려 어려움에 닥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류 감독도 이와 같은 이유로 “프로야구 선수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삼성은 6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김태완을 주전 3루수로 썼다. 팀 부동의 3루수인 박석민의 눈에 다래끼가 나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자로 나선 김태완은 이 경기에서 4타수 2안타 3타점의 맹활약을 선보였다. 그러자 류 감독은 박석민의 상태가 많이 호전됐음에도 7일 선발 라인업에 다시 김태완의 이름을 올렸다. 박석민의 가벼운 부상을 틈타 김태완이 천금 같은 기회를 2경기 연속 얻은 것이다.
물론 김태완이 박석민을 밀어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류 감독은 “박석민이 주전이라고는 하지만 감독으로서 어제 좋은 활약을 한 선수를 빼기는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김태완도 우리로서는 써야 할 선수”라고 강조하면서 “만약 김태완이 이대로 계속 잘하면 박석민은 대타로 나가야 한다”라고 껄껄 웃었다. 경쟁을 유도하는 류 감독의 속내가 웃음에서 묻어나왔다.
어쩌면 통합 3연패를 이룬 삼성의 저력도 여기서 나올지 모른다. 삼성은 3연패 기간 동안 주전과 비주전 선수들의 차이가 적은 편에 속했다. 예전처럼 FA 영입에 돈을 펑펑 쓴 것도 아니었다. 잘 갖춰진 팜 시스템에서 유망주들이 계속 잠재력을 터뜨린 영향이 컸다. 이들은 기존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라는 틈을 놓치지 않고 선발 라인업에 꾸준히 유입됐다. 그 결과 세대교체도 비교적 원활하게 잘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2011년과 2014년의 삼성은 라인업과 무게중심이 쏠리는 축 모두가 많이 바뀌었다.
올해도 그런 경쟁 속에서 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류 감독은 “시즌 초반 정형식이 부진할 때 이영욱이 들어와 잘해줬다. 그런데 이영욱이 떨어지자 정형식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 자리를 꿰찼다”라면서 경쟁이 주는 효과를 설명했다. 진갑용이 부상으로 빠진 포수 포지션에서도 이흥련이 좋은 모습으로 기존 선배들보다 더 많은 출전 시간을 소화 중이다.
이런 모습은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에게도 ‘방심하면 안 된다’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리고 이는 훈련과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밀리고 밀어내는 싸움이 가혹하긴 하지만 어쟀든 팀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어디를 가든 ‘철밥통’이 많은 조직은 썩기 마련이다. 삼성은 이 평범한 명제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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