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승헌이 우울한 전쟁영웅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배우에게서 늘 익숙하게 느꼈던 '어딘가 우수에 찬' 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많은 작품에서 말수가 적고 슬픔 때론 반항 가득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기억인데 이번 영화 '인간중독'(감독 김대우)에서 역시 우울한 인물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공감을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전쟁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우고 화려하게(?) 관사로 복귀한 김진평(송승헌 분)은 주위의 박수나 칭송이 달갑지 않다. 그저 전쟁의 후유증으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남편의 영달을 위해 극성을 떠는 아내 이숙진(조여정 분)의 내조가 버거운 남자일 뿐.
송승헌은 약 4년 만에 자신의 작품을 들고 극장을 찾았다. 최근 몇 년간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닥터 진' 등으로 해마다 한 번씩은 안방극장에 인사를 했지만 영화 개봉은 오랜만이다. 그래서 새롭고 기대를 모은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송승헌이 과연 될까'하는 우려도 공존했다. '인간중독'이 '방자전', '음란서생' 등을 만든 김대우 감독의 치정 멜로이기 때문에 더더욱, 송승헌이 노출 연기라니, 격정적인 정사신을 소화한다니, 호기심과 함께 '과연 얼마나 어떻게 보여줄까'하는 의문이 도사렸다.

14일 개봉을 앞두고 먼저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인간중독'에서 그는 일각의 우려를 시원하게 날릴 결과물을 내놨다. 스크린엔 드라마 '가을동화'의 가슴 아픈 오빠나 영화 '숙명, 드라마 '에덴의 동쪽' 속 선굵은 패기의 사나이, 또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의 근사하지만 무기력한 보스 대신 혼돈 속에 서있는 엘리트 장교 김진평이 커다랗게 서있다.

인터뷰를 통해 데뷔 후 첫 노출과 베드신 연기라며 부담과 동시에 각오를 밝혔던 그는 생각 이상 멋졌다. 물론 연예계 대표 소문난 몸짱 스타답게 실망을 시키지 않는 구릿빛 몸매는 기본이다. 부하의 아내 종가흔(임지연 분)과 불륜에 빠져 육체와 정신의 포로가 된 남자는 격정적인 정사신에서 억눌렀던 속내를 폭발시킨다. 그것은 단순히 야하기보다 심적 고통과 슬픔의 승화로 나타난다. 그래서 정사신에 격렬하게 사용되는 송승헌의 근육들엔 마치 표정이 달린 듯 보인다.
동료와 선후배들의 존경을 받으면서 밖에서는 위엄을 잃지 않지만 실은 몰래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이 들고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가련한 남자, 김진평이란 인물은 송승헌에 의해 우울하고도 아련하게 태어났다. 그리고 본 적 없는 여인과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사로잡힌 남자는 끝을 향해 위태롭게 달려갔다.
송승헌은 할 수 있는 건 다 한 모습이다. 배우 본인의 만족도와는 별개로 관객들로서는 이제껏 알던 송승헌 대신 분명 다른 인물을 만나는 2시간이 될 것이다. 전형적 꽃미남 스타라는 수식에 갇혀 나올 듯 터질 듯 머뭇댄 매력이 이번 영화에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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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독'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