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의 선택이 옳았을까.
지난 10일 포항스틸야드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4 12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 전남 드래곤즈의 제철가 더비. 이명주(24, 포항)는 월드컵 최종엔트리 탈락의 한이라도 풀듯 마법같은 플레이를 연이어 선보였다. 홀로 1골 2도움 원맨쇼를 펼치며 3-1 승리를 이끌었다.
새 역사를 썼다. 이명주는 전인미답의 K리그 최다 연속 공격포인트 대기록을 작성했다. 마니치(1997년, 당시 부산, 6골 5도움), 까보레(2007년, 당시 경남, 7골 5도움), 에닝요(2008년, 당시 대구, 8골 4도움), 이근호(2013년, 상주, 9골 4도움)가 세웠던 9경기를 넘어 10경기(5골 9도움) 연속 공격포인트 신기록을 세웠다.

이명주는 이날 물 만난 고기마냥 그라운드를 누볐다. 시종일관 전남의 수비진을 괴롭혔다. 포항의 공격은 모두 그의 발끝에서 시작됐고, 마무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명주는 이날 전남의 전체 슈팅보다 1개 적은 7개의 슈팅을 날리고도 1개 많은 5개의 유효슈팅을 기록했다.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이명주는 전반 26분 침착한 왼발 선제골을 포함해 중거리 슈팅, 프리킥 등으로 전남의 골문을 연신 위협했다. '백전노장' 김병지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해트트릭도 가능했다. 비단 골뿐만이 아니었다. K리그 도움 1위 답게 도우미 역할도 200% 소화했다. 후반 5분 자로 잰 듯한 코너킥으로 강수일의 헤딩 추가골을 도운 이명주는 1-2로 턱밑 추격을 허용하던 후반 추가시간엔 정확한 패스로 김승대의 쐐기골을 도왔다. 그야말로 이명주의 날이었다.
불과 사흘 전 8일은 이명주에게 악몽과도 같은 날이었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발표한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이명주의 이름은 없었다. 홍 감독이 밝힌 이명주의 탈락 이유는 다른 공격수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부족했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능력이 박종우(광저우 부리)보다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명주는 지난 시즌까지 본업인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만족스러운 활약을 펼쳤다. 비록 홍명보호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리그와 대표팀에서 모두 부진했던 박종우보다는 나은 경기력을 보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명주는 올 시즌 팀 사정상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신했다. 맞지 않은 옷을 입고도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종횡무진 활약했다. 그의 공격적인 능력이 현재 홍명보호의 2선 공격수들에 비해 부족한 게 무엇인지 묻는 사람들이 많다.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2선 공격수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김보경(카디프 시티) 등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한국 축구의 미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올 시즌 소속 팀에서 오롯이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졌다. 유럽 무대가 K리그보다 수준 높은 무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기에서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는 유럽파와 매 경기 K리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국내파 중 어떤 선수를 택할 것인지는 또 다른 논란이 될 수 있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자신의 축구 스타일에 가장 부합한, 그리고 자신의 전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선수를 뽑아야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놓은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선택을 했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던 홍 감독이다.
홍 감독이 출범 직후부터 지금까지 유지해 온 원칙은 '소속팀에서 꾸준히 출전해 활약하는 선수'와 '멀티 플레이 능력'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명주는 이 두 가지 원칙을 모두 갖춘 선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게다 운동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컨디션도 현재 대표팀 선수 중 최고조에 올라있다. 홍 감독이 그를 제외할 이유보다는 뽑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는 것이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박주호(마인츠)도 마찬가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좌측 수비수 외에도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할 수 있는 박주호는 윤석영(퀸스 파크 레인저스)보다는 여러 모로 더 활용가치가 높은 카드였다는 의견이 많다. 부상 회복 정도가 마음에 걸렸다면 박주호를 먼저 선발하고, 추후 경과를 지켜본 뒤 윤석영으로 대체했어도 됐다는 것이다. 홍명보 감독은 이래저래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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