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로 돌아온 니퍼트, 비결은 ‘망각의 힘’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4.05.11 06: 40

인간의 특징을 설명할 때 절대 빼놓으면 안 되는 것은 바로 망각의 동물이라는 속성이다. 모든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잊어간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세부적인 부분부터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한다.
망각의 동물이라는 인간적 특징은 야구선수들에게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신이 좋았을 때의 폼이나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최근에는 좋았던 것들을 잊지 않게 첨단장비의 힘을 빌려 전력분석을 지속하는 선수들이 많다. 자신의 최상의 모습을 잊는다는 것은 모든 선수들에게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나빴던 것도 잊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큰 경기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한 선수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스스로에게 남기기도 하지만, 나쁜 경기의 기억을 빨리 잊는 선수는 다음 경기에서 다시 정상적인 기량을 펼칠 확률이 높다. 나쁜 일을 빨리 잊는 것은 야구선수에게는 능력이기도 하다.

두산 베어스의 에이스인 더스틴 니퍼트는 다른 선수들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의식적인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이겼을 때나 졌을 때나 한결같다. 니퍼트는 10일 잠실 삼성전에서 9이닝 5피안타 2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둔 뒤에도 “좋은 순간이 있었지만 오늘로 끝이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대부분의 선수라면 좋은 경기를 기억하고 그 흐름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니퍼트의 마음가짐은 조금 달랐다. “나는 단기기억상실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예전 모습의 영향을 받기보다는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던지고 싶다”는 것이 니퍼트의 설명.
10일 경기에서의 쾌투도 이러한 의식적 트레이닝의 결과물이었다. 이전 등판인 4일 잠실 LG전에서의 6이닝 11피안타 7실점 부진도, 4월 16일 대구 삼성전에서 7이닝 4피안타 8탈삼진으로 무실점한 호투도 모두 잊었다. 그저 경기 당일 자신의 공 중 가장 좋았던 포심 패스트볼(최고 구속 152km)을 적극 활용해 타자들을 잡아낸 것이 전부였다.
경기에 나서는 선발투수가 지난 경기의 기억들을 말끔히 지워낼 수 있다면 이전 경기의 부진이 정신적인 부담을 불러오는 일도 없고, 필요 이상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갈 상황도 생기지 않는다. 경기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들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이를 완벽히 행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다만 니퍼트의 경우 피칭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외부요인들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컨디션 관리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니퍼트 역시 늘 그럴 수는 없겠지만, 9이닝을 홀로 버티며 이번 시즌 리그 첫 완투를 해낸 배경에는 오랜 시간 지속된 높은 수준의 마인드 컨트롤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패배에 위축되지 않는 정신력이 있기에 니퍼트는 에이스다.
nick@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