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기대보다는 지원을, 현장과 수직구조가 아닌 수평구조를 구축해야한다. 프런트와 현장의 관계가 그대로라면, 악몽 같은 과거가 반복될지도 모른다.
LG의 선택은 양상문 감독이었다. LG는 11일 목동 넥센전이 끝난 후 제12대 감독으로 양상문 감독을 임명했다. 이로써 LG는 지난 4월 23일 김기태 감독이 자진사퇴한 후 18일 만에 새 사령탑을 확정지었다. 양 감독은 LG와 3년 6개월 계약을 체결, 2017시즌까지 지휘봉을 잡는다.
지금까지 LG 감독 대부분이 그랬지만, 양 감독은 보다 어려운 상황서 LG를 이끌게 됐다. 무엇보다 시즌 도중, 그것도 최하위로 추락한 팀의 수장이 됐다. 11일까지 LG는 10승 23패 1무로 9위, 5할 승률 ‘-13’을 찍고 있다. 스프링캠프를 치르지도 않았고 당연히 선수단 파악이 안 된 상태다. 마냥 반등을 요구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역사를 돌아봐도 시즌 중 감독이 바뀌고 반전에 성공한 일은 드물었다.
1991시즌 두산의 전신인 OB는 이재우 감독이 8월 1일 중도 퇴진했고, 윤동균 감독대행을 9월 9일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켰다. 당해 윤 감독은 대행으로 19승 17패 1무, 감독으로서 7승 3패로 5할 이상의 성적을 냈다. 하지만 OB는 이미 최하위로 떨어진 상태였고, 윤 감독 체제서도 탈꼴찌에 실패했다.
2002시즌 롯데도 그랬다. 우용득 감독 체제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당해 6월 21일 극심한 성적 부진으로 중도 해임됐다. 롯데는 우 감독 해임 이후 4일이 지난 6월 25일 백인천 감독을 선임해 반전을 노렸다. 그러나 백 감독은 부임전 17승 44패 1무였던 롯데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백 감독 부임 후 롯데는 18승 53패로 더 추락했고, 결국 35승 97패 1무로 승률 2할6푼5리, 21세기 한국프로야구 최저 승률을 찍었다.
성공사례는 1983년 단 한 차례뿐이다. LG의 전신인 MBC는 1983시즌 전기리그서 백인천 감독이 16경기 만에 낙마했다. 이후 한동화·유백만 감독대행 체제로 돌아갔는데 전기리그 막바지였던 6월 25일 김동엽 감독을 선임했다. 김동엽 감독의 MBC는 후기리그서 30승 19패 1무로 우승에 성공, 대반전을 이뤘다. 당시 전후기리그로 페넌트레이스가 나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기대해볼만한 면도 있다. 양 감독은 LG를 지도한 경험이 있다. 2002시즌과 2003시즌, 그리고 2007시즌과 2008시즌 LG 투수코치를 맡았다. 2002시즌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LG 선수들 상당수가 남아있다. 무엇보다 선수들 대부분이 양 감독과 당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금도 터울 없이 지낸다.
꾸준히 현장에 있었다는 것도 강점이다. 양 감독은 2010시즌 롯데 투수코치를 역임한 후에도 해설위원과 WBC 투수코치 및 수석코치로 현장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넓은 시각에서 리그를 바라보고 분석해왔기 때문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양 감독은 “LG가 예전보다 투타 모두 선수층이 두터워졌고 신구 조화도 잘 이뤄져 있다. LG에서 4년간 코치로 활동했었기 때문에 선수들에 대해 잘 알고 친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를 수 있다. 시즌 도중에 들어와서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선수들과의 대화를 통해 잘 추스르겠다”고 덧붙였다.
양 감독의 뚜렷한 족적은 2004시즌과 2005시즌 롯데다. 당시 처음으로 프로팀 사령탑에 오른 양 감독은 최약체 롯데를 일으키기 위해 과감한 리빌딩에 착수했다. 이대호 강민호 장원준 박기혁 등을 꾸준히 경기에 투입시켰고, 1년 만에 팀의 주축으로 키워냈다. 이후 롯데는 2008시즌부터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양상문의 LG에 주목할 부분도 신진세력 육성이다. 그동안 LG는 많은 유망주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팀으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재능이 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수들 스스로 성적, 주위 기대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채 그저 그런 2군 선수가 됐다. 양 감독이 롯데에서 했던 것을 LG서도 이룬다면, LG는 어느 팀 못지않게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할 것이다. 양 감독 스스로도 “오랫동안 강팀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이를 이루기 위해선 프런트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 동안 LG는 현장 지원에서 그룹 규모와 상반되는 행보를 보였다. 지난겨울만 봐도 그랬다.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음에도 FA·외국인선수 영입에 소극적이었다. 트레이드도 최종 승인이 이뤄지지 않아 없던 일이 됐다.
작년 11월 특급 FA 선수가 LG 유니폼을 입기를 희망했다. 스카우트는 현재 메이저리그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외국인선수와 협상 테이블을 차렸다. 하지만 프런트는 현장의 바람을 외면했다. 전임자 김기태 감독은 구단의 아쉬운 결정을 언론에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모든 것을 안고 가려고 했었다.
LG는 2002시즌 포스트시즌 진출 후 10년의 암흑기를 거친 쓰라린 경험이 있다.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양 감독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 오는 7월부터 경기도 이천에 최신식 2군 시설이 가동된다. 프런트가 현장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양 감독도 자신의 이상향을 빠르게 실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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