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이 될까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환갑을 넘긴 개그맨 이홍렬이 MBC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복귀해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코미디를 보여준다? 현재 인기를 얻고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형식과는 딱히 공통점을 찾을 수 없어 궁금즘을 자아내는 동시, 우려가 됐던 것도 사실이다.
12일 오전 0시 5분 첫 방송된 MBC '코미디의 길'은 기존 공개 코미디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웃음을 찾으려는 시도가 돋보였던 새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강력해진 세태 풍자와 거기서 나오는 페이소스, 신·구 개그맨들의 조화가 확실히 색다른 웃음을 줬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끌었던 것은 대 선배 개그맨 이홍렬이 선보였던 '다큐 코미디'. 과거 MBC에서 '귀곡산장' 등의 코너로 절정의 인기를 끌었던 이홍렬은 직접 MBC 예능국을 찾아와 "MBC 코미디의 영광을 돌려주고자 내가 코미디를 해야겠다 (생각했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자신만만했던 모습과 달리 방송국에 찾아간 이홍렬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안내 직원으로부터 "방문증을 끊으셔야 된다"는 말을 듣는 굴욕을 당했고, 왕년의 명성은 간데없이 국장부터 팀장, PD 등 관련 담당자들로부터 겨우겨우 출연 허락을 받아냈다. 까마득히 어린 후배들은 그를 환영했지만, 함께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말에는 난색을 표했다.
이홍렬은 새롭게 문을 연 '코미디의 길'을 상징하는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다. 매 코너마다 그의 얼굴이 들어간 캐릭터가 등장했고, 그가 출연하는 '다큐 코미디'는 이번 프로그램의 주력 코너인 만큼 2회로 나뉘어 선보여졌다. 중간중간 관객들과 함께 하는 공개 콩트, 세트에서 촬영한 비공개 콩트가 번갈아 등장했다.
이홍렬의 서글픈 개그 도전기가 상징하듯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웃픈'(웃기고 슬픈) 세태 풍자 개그들이 돋보였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골방주식회사', '화장을 지우며' 등 프로그램은 각각 기러기 아빠, 청년실업, 빈곤 등의 문제를 웃음으로 승화시켜 다뤘다. 이를 연기한 정성호, 최국, 정명옥 등 내공 있는 개그맨, 개그우먼들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기존 공개 코미디에 익숙한 팬들이 반길만한 프로그램들도 놓치지 않았다. 애견훈련학교에서 벌어지는 개들의 이야기로 현대인의 삶을 꼬집은 '개.사.세',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몸을 던지는 두 개그맨의 '웃픈' 사연 '대박코너'와 기존 '코미디의 빠지다'에서 인기를 끌었던 'MSG',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돌직구' 등의 코너가 현장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했다.
이홍렬의 귀환과 함께 MBC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부활을 다시 한 번 꿈꾸고 있다. 이는 '다큐 코미디'에서 선보였던 이홍렬의 도전기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날 방송은 날카롭게 살아있는 비판 정신과 웃음의 조화가 돋보였고 의미있는 새로운 시도들이 색다른 웃음을 만들어내며 앞으로를 기대하게 했다. '코미디의 길'이 MBC 코미디를 다시 코미디 중심의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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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의 길'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