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의 위상, 자리 잡는데 큰 힘이 됐다."
세계 최강 미국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 볼링.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정확하다고 해 '로봇볼링'이라는 수식어가 따로 붙은 한국 볼링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멀리 중동에서 활약 중인 지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좀더 피부에 와닿는 한국 볼링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현재 중동에는 4명의 한국인 볼링지도자가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에는 김의영(57) 감독이 있고 쿠웨이트에는 박명환(56) 감독과 엄태진 코치가 있다. 박 감독은 성인 남자 대표팀, 엄 코치는 청소년 및 유소년 대표팀을 지도 중이다. 바레인은 이훈표(48) 감독이 맡았다.

지난 9일(한국시간)부터 바레인에서 열린 'GCC 볼링대회'에서 엄 코치를 제외한 3명의 감독들을 OSEN이 만날 수 있었다. 작년 8월에 부임, 성인부터 청소년, 유소년까지 바레인 볼링대표팀 전체를 지도하고 있는 이 훈표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한국 볼링의 위력을 실감했다.
이 감독은 "여기에서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오신 두 선배(김의영, 박명환)의 도움이 컸다. 두 분 다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내게도 기회가 왔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특히 오자마자 열린 세계볼링선수권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이 남녀 동반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바람에 더 큰 힘을 얻었다. 직접 세계선수권을 보고 왔지만 정말 한국이 대단했다. 덕분에 바레인에 오자마자 모두가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자리를 잡는데 확실한 배경이 돼줬다"고 고마워했다.
지난 2013년 8월말 열린 세계선수권에는 '볼링의 메이저리그'라 할 수 있는 미국프로볼링(PBA) 선수들이 대거 참가했다. 게다가 볼링의 종주국인 미국의 안방에서 열려 한국 볼링에 대한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 남녀는 개최국 미국(금 5개, 은 4개, 동 4개)을 제치고 종합 우승(금 5개, 은 4개, 동 5개)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공식 해외진출 지도자 1호' 김의영 감독은 좀더 객관적이고 세계적인 관점에서 한국 볼링의 위력을 느끼게 해줬다. 이미 지난 2012년 10월 UAE 감독 부임 전, 11년 동안 태국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활약했던 김 감독은 전세계 지도자 중 유일하게 세계볼링연맹 기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누구보다 볼링에 대한 세계적인 동향을 잘 읽고 있다.
김 감독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금 8개(은 5, 동 2)를 따내면서 중동 국가들이 관심을 나타냈다. 이후 미국이나 유럽 코치들만 채용했던 중동 국가들이 한국의 시스템을 계속해서 눈여겨 봐왔다"고 전했다. 이어 "기술이나 체력은 중동 볼러들이 오히려 한국을 앞설 수 있다. 하지만 멘탈적인 부분에서 한국을 따라 잡을 수 없다. 박빙의 승부에서 왜 항상 한국 선수들이 이기는지 관심을 가졌다. 그것이 한국 지도자를 영입한 이유 중 하나다. 물론 태릉선수촌에서 합숙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훈표, 김의영 감독은 국가대표팀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박명환 감독 만큼 한국대표팀을 더 잘 알 수는 없다. 2012년까지 거의 대표팀 코치를 도맡았던 박 감독이다. 작년 3월 쿠웨이트에 부임한 박 감독은 "그동안 각종 세계대회에서 많이 봐서 다들 알아보더라. 그래서인지 말이 통하지 않아도 표정만으로 알아듣는다. 지도한 것도 생각보다 잘 따라한다"고 웃었다. 이어 "여기서 보는 한국 볼링은 아시아 최고이면서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기 쿠웨이트 협회에서는 특히 한국이 멘탈적인 부분에서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엄태진 코치까지 불러서 대표팀 전체를 마인드적인 부분부터 바꿔 놓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이렇듯 중동 국가들이 한국인 지도자를 영입한 것은 한국식 볼링 교육 시스템으로의 변화를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직 인적, 시설적인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 않다. 협회의 지원, 문화, 종교적인 문제도 있다. 하지만 한국 볼링의 DNA가 점점 중동에 심겨지고 있다.
지난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8년만에 아시안게임 사령탑에 앉은 박창해 감독도 경계하고 있다. 박 감독은 "최소 6~9개의 금메달을 따내 반드시 종합우승을 하겠다"면서도 "남자부의 경우 한국인 지도자가 있는 중동세를 무시할 수 없다"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과연 오는 9월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줄 한국 볼링 DNA가 이식된 중동 3인방의 위력은 어느 정도일지. 한국 볼링은 그 위상이 높아질수록 더욱 힘겨운 경쟁을 펼쳐야 한다.
letmeout@osen.co.kr
이훈표-김의영-박명환(위) / 볼링코리아 제공(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