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 9년’ 양상문의 의미 있는 첫 걸음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4.05.14 06: 08

“어느 팀이든 감독 자리가 비면 몰래 마냥 전화기만 바라본 적도 많았다. 2005년 이후 감독 자리를 놓고 와신상담했다.”
LG 양상문 감독의 호칭은 여러 가지다. 2004시즌과 2005시즌 양 감독과 인연을 함께 했던 선수들과 코치들은 ‘감독’이라고 한다. LG·롯데·국가대표팀에서 처음으로 양 감독을 만난 이들에게는 ‘코치’다. 불과 3일전, 양 감독의 호칭은 ‘해설위원’이었다.
야구계에서 오직 양 감독만 지닌 호칭이 있다. 바로 ‘박사’다. 양 감독은 한국프로야구에서 뛴 선수 중 최초의 ‘석사 출신’이다. 현역 생활 중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역 은퇴 후 바로 롯데 코치가 됐는데 코치·감독·해설위원을 역임한 20년 동안에도 꾸준히 공부했다. 양 감독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야구인이 그를 ‘양 박사’라고 부른다.

야구계 최초의 ‘공부하는 지도자’는 2004시즌을 앞두고 만 43세의 나이로 롯데 감독이 됐고 2005시즌까지 2년 동안 사령탑에 올랐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였다. 롯데는 2004시즌 50승 72패 11무로 최하위, 2005시즌 58승 67패 1무로 5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과정을 보면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롯데는 이미 2001시즌부터 2003시즌까지 3년 연속 최하위에 박혀 있었다. 양 감독은 당시 롯데의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과감하게 ‘리빌딩’ 스위치를 눌렀다. 이대호 강민호 장원준 박기혁에게 출장 기회를 보장했고 롯데는 조금씩 틀을 갖춰나갔다. 이들 넷은 향후 롯데의 주축 선수를 넘어, 국가대표로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양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는 나도 많이 어렸다. 당시 롯데의 전력은 정말 약했다. 그럼에도 열정 하나만 갖고 덤벼들었던 것 같다”고 웃으며 “비록 계약기간이 끝난 후 롯데와 재계약은 못했지만, 나름 성과를 냈다고 생각했다. 2, 3년 뒤에 롯데가 성적이 나기 시작했고 내 시야가 틀리지 않았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흐뭇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감독이 되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릴 줄은 솔직히 몰랐다”고 말했다.
와신상담에 9년이 걸렸다. 그런데 이 9년이 양 감독을 ‘공부하는 지도자’뿐이 아닌 ‘충분히 준비된 지도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양 감독은 감독으로서 9년 공백, 프로야구 지도자로서 4년 공백을 우려하는 질문에 대해 “긴 시간 동안 내가 부족한 게 무엇인지, 성공한 감독들의 장점은 무엇인지 공부해왔다. 혹시 모를 기회가 올 수 있어서 준비했는데 그 기회가 왔다.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걱정하시는데 실망스럽지 않은 팀을 만들겠다고 약속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덧붙여 양 감독은 “특히 해설위원을 하면서 시야를 넓게 가져갈 수 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각 구단 스프링캠프를 찾아가 감독·코치·선수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는 정말 큰 자산이 될 것이다”고 밝혔다.
LG 감독 데뷔전부터 양 감독의 이야기는 현실이 됐다. 양 감독은 제자들이 많은 롯데와 대결서 공수 균형을 맞춘 선발 라인업을 들고 나왔고, 1회부터 9회까지 라인업 변화 없이 5-0 승리를 거뒀다. 대타를 고민한 순간도 있었으나 그동안 LG와 롯데를 면밀히 파악한 것을 근거로 선발 라인업 그대로 밀고 나갔다.
경기 후 양 감독은 3점을 뽑아 승부에 쐐기를 박은 8회말에 대해 “오지환의 타석 때 정의윤 대타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투수 이명우가 각도 큰 변화구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지환이를 바꾸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가 2점을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9회초 수비를 생각하면 지환이가 라인업에 있는 것이 낫다고 봤다”고 했다.
오지환은 삼진이 많다. 노렸던 직구가 들어왔을 때 지나치게 힘이 많이 들어가 파울이나 헛스윙 삼진을 당하곤 하며, 낙차 큰 변화구에도 잘 대처하지 못한다. 그러나 수비는 LG서 대체불가다. 간혹 쉬운 타구에 에러를 범하지만, 수비 범위·송구 능력만 놓고 보면 리그 최고 수준이다.
한국프로야구도 메이저리그처럼 수비범위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있다면, 오지환의 수비능력은 분명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양 감독 또한 이날 경기 전 오지환을 두고 “지환이는 수비를 굉장히 잘하는 선수다. 지환이의 수비를 두고 우려하는 시선이 있는데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신뢰를 드러냈다. 
양 감독이 꼽은 승부처에도 오지환의 수비가 있었다. 양 감독은 “4회초 수비가 가장 컸다. 황재균의 2루 도루 때 오지환의 백업플레이로 황재균에게 한 베이스를 더 주지 않았다. 그리고 문규현의 강한 타구에 정성훈의 절묘한 캐치가 나왔다”고 이날 경기를 돌아봤다.
4회초 LG는 1사후 황재균에게 중전안타를 맞았고 곧바로 2루 도루까지 허용했다. 도루를 내줬을 때 포수 최경철의 송구가 2루 베이스 뒤로 빠졌는데 오지환이 넓게 백업플레이에 임하며 에러를 막았다. 만일 오지환이 최경철의 송구미스를 백업하지 않았다면 황재균은 3루까지 진루했을 것이다. 당시 타석에는 타율 3할3푼3리의 문규현이 있었다. LG가 선취점을 내줄 위기에 직면했는데 실제로 당시 문규현이 친 타구도 정성훈의 호수비가 아니었으면 안타가 될 만했다.
양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 막바지에 “경기 전 덕아웃 브리핑 시간에 무슨 질문이든 성실하게 답변해 드리겠다”고 했다. 팀을 충분히 성찰하고 경기를 준비한 감독들 대부분이 경기 전 덕아웃 인터뷰를 길게 가져가며 명확하게 답변한다. 대표적인 이가 삼성 류중일 감독과 넥센 염경엽 감독이다. 깊게 아는 만큼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양 감독의 공부는 진행형이다. 양 감독은 “1군 선수들은 그동안 해설을 하면서 파악해 왔으나 2군 선수들은 모른다. 2군 보고서를 믿지만 야구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때문에 감독인 내가 직접보고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여건이 된다면 오전마다 직접 2군 경기장을 찾아 갈 것이다”고 LG 전체를 파악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양 감독은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디뎠다. 양 감독의 종착역이 어느 곳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공부하며 준비된 지도자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상종가를 치고 있는 감독들과 코치들 대부분은 야구이론은 물론, 심리학에도 눈길을 둘 정도로 공부한다. 양 감독은 스프링캠프 없이 최하위에 자리한 팀을 시즌 중에 맡았다. 그러나 공부하는 양 감독이기에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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