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전에 등판하는 왼손 투수들은 각오를 좀 더 단단히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왼손을 상대로 유난히 강한 모습을 보이는 두산 타자들 때문이다. 수준 높은 왼손 투수들이 득세하고 있지만 두산은 이를 비웃고 있다.
두산은 13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 9-6으로 이기고 3연승을 내달렸다. 연승도 연승이지만 타선으로서는 자신감을 가질 만한 한 판이었다. 리그 최고의 왼손 투수 중 하나인 김광현을 상대로 6점을 뽑아내며 힘을 냈기 때문이다. 상대 에이스를 넘은 승리라 팀 분위기에 주는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바로 왼손에 강한 두산 타선이다. 두산은 상대 선발 투수가 왼손일 때 7승4패(.636)를 기록하고 있다. 리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다. 5개 팀이 5할 아래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의미가 있다. 반면 상대 선발이 오른손일 때는 12승11패(.525)로 리그 5위에 머물렀다. 상대적으로 왼손을 상대로 힘을 내고 있다는 점은 명확히 짚인다.

왼손 투수 상대 타율은 무려 3할4푼3리다. 2위 LG(.289)보다 훨씬 높은 압도적인 1위다. 그래서 그럴까. 두산을 상대로 출격한 많은 왼손 투수 중 승리를 따낸 선수는 단 세 명(임지섭, 유먼, 유창식) 뿐이다. 장원삼(삼성)과 김광현(SK)은 두 번의 대결에서 모두 패전을 떠안았고 양현종(KIA)도 끝내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한 기억이 있다.
왼손에 가장 강했던 선수는 리드오프로 나서는 민병헌이었다. 민병헌은 올 시즌 왼손 투수를 상대로 5할7푼9리의 성적을 내고 있다. 리드오프부터 활발하게 살아나가다 보니 팀 타선의 생기가 도는 것은 당연하다. 주로 5번에 위치하는 홍성흔이 4할3푼8리를 기록하며 팀 내 2위에 올라있다. 두 선수는 왼손 투수를 상대로 7개의 홈런을 합작했다. 그 외 오른손 타자로는 양의지(.357)와 허경민(.333)의 성적도 좋은 편이다.
결정적인 것은 보통 왼손 투수들에게 약해야 할 왼손 타자들이 힘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김현수가 4할, 오재원이 3할7푼, 정수빈이 3할6리 등 왼손 투수를 상대로 골고루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왼손 투수를 상대하는 라인업을 구멍 없이 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인 타자 칸투가 왼손 투수에 약한 모습(타율 .226)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를 충분히 상쇄하고 남을 조직력이다.
이에 대해 홍성흔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다”라고 웃으면서도 “요즘 우리 선수들은 오른손, 왼손, 언더를 가리지 않을 만큼 집중력이 좋은 것 같다.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것이 왼손에게 효과를 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실제 두산은 왼손 투수를 상대로 헛스윙률이 6.8%에 불과해 리그에서 가장 헛손질이 적은 팀이었다. 16.7%의 파울 비율과 16.7%의 루킹 스트라이크 비율 역시 삼성에 이어 리그 2위였다. 요약하면 리그에서 왼손 투수를 상대로 가장 질기게 승부를 한 팀이었다는 뜻이다. 왼손을 상대로 강하다는 것은 최근 추세에서 생각보다 큰 메리트가 될 수도 있다. 두산의 이런 면모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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