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당 떨어져야 할 타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신들린 타격감이다. 이재원(26, SK)의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언제까지 4할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자연스레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재원은 13일 현재 타율 4할7푼4리, 5홈런, 24타점의 만점 활약을 펼치고 있다. 타격 2위인 루이스 히메네스(롯데, .387)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은 독보적 1위다. 그렇다고 안타만 잘 치는 것이 아니다. 최근 5경기에서 3개의 대포를 쏘아 올리며 장거리 타자다운 장타력도 과시하고 있다. 출루율은 5할5리, 장타율은 7할5푼8리에 이른다.
사실 이 기록은 조만간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현실적으로 하루에 2개 이상의 안타를 쳐야 기록 유지가 가능한데 이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데뷔 이후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페이스인 이재원이기에 더 그랬다. 상대 투수의 견제가 시작되면 자연스레 떨어질 기록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재원은 4할 중·후반대의 타율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4월 26일 4할7푼3리였던 타율은 보름이 훨씬 지난 이 시점까지도 별 변화가 없다.

원래부터 타격 재질은 정평이 나 있던 선수였지만 올 시즌 활약상은 기대 이상이다. 꾸준한 출전 기회가 주어지고 성적도 따라오자 최근에는 자신감도 붙었다. 타율에 초점을 맞춘 스윙보다는 좀 더 과감하게 배트를 돌리는 변화도 눈에 들어온다.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스윙이다. 삼진이 많아졌지만 그만큼 홈런을 비롯한 장타도 많아졌다. 이는 자신의 타격감을 유지함은 물론 상대 투수들을 압박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
당분간은 이런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물론 언젠가는 떨어질 타율이지만 상대적으로 그 폭이 가파르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다. 우선 여러 유형의 투수들에게 고루 강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재원은 올 시즌 왼손을 상대로 5할4푼2리, 오른손을 상대로 4할7푼4리, 옆구리 유형 투수를 상대로 3할5푼7리를 기록 중이다. ‘왼손에만 강하다’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오히려 5개의 홈런 중 4개를 오른손으로부터 뽑아냈을 정도로 오른손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여기에 체력 관리도 비교적 수월하다. 이재원의 본업은 포수지만 최근에는 주로 지명타자로만 출장하고 있다. 당초 조인성의 부상으로 이재원에게도 조금씩 마스크를 나누려고 했던 SK 벤치는 이재원의 타격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백업 포수인 허웅을 1군에 올렸다. 상대적으로 체력소모가 덜한 상황에서 타격에만 전념할 수 있다. 여기에 앞뒤로 위치할 외국인 타자 루크 스캇의 우산효과도 볼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이재원을 둘러싼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재원은 지난해 가장 오랜 기간 4할 타율을 유지했던 배영섭(삼성, 5월 9일)의 기록을 이미 넘어섰다. 현재 페이스와 남은 경기로 봤을 때 적어도 5월까지는 4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자로만 따졌을 때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6번째 ‘6월 4할 타자’로 등극할 수 있다. 이재원의 타격 페이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재원이 김태균(한화)의 기록에도 도전할 수 있을까. 김태균은 2000년대 들어 프로야구에서 가장 오랜 기간 4할을 유지한 타자였다. 2012년 당시 8월 3일까지 4할을 기록했다. 최종 성적은 3할6푼3리였지만 한 때 ‘꿈의 4할 타자 재출현’의 기대를 품게 했었다. 물론 이 기록에 도전하려면 아직 남은 시간이 많다. 실현 가능성을 쉽게 점치기 어려운 이유다.
다만 당시 김태균의 성적보다 현재 이재원의 성적이 못할 것은 없다. 김태균은 2012년 5월 13일까지 4할5푼5리의 타율을 기록했다. 이재원의 타율이 더 높다. 홀로 싸워야 했던 김태균과는 달리 동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또한 플러스 요소다. 여기에 어차피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선수라는 점도 긍정적이다. 결국 관건은 볼넷을 얼마나 골라낼 수 있느냐로 보인다. 안타를 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볼넷을 통해 타율 관리를 할 수 있다면 하락폭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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