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은퇴] 'J리그부터 에레디비지에까지' 14년 발자취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4.05.14 11: 18

한국 축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산소탱크’ 박지성(33, 아인트호벤)이 공식 은퇴를 발표했다.
박지성은 14일 경기도 수원 박지성축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생활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박지성은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제가 은퇴할 것이라 모두 아셨을 것이다. 공식적인 은퇴를 말씀 드리려는 자리다"라고 말문을 연 후 "그동안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2월 부터 결심을 굳혔다. 더이상 축구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릎이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며 "팀에 돌아가서 더이상 활약하지 못할 것 같아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지성의 은퇴 가능성은 그가 뛰고 있는 네덜란드 현지 언론으로부터 먼저 제기됐다. NU스포르트 등 현지 언론들이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박지성이 현역 은퇴를 발표할 것이라고 일제히 보도한 것. 이에 박지성은 지난 8일 귀국 후 열애 중인 김민지 아나운서와의 결혼은 물론, 향후 거취에 대해 이날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이야기했다.

결과는 은퇴였다. 2000년 일본 J리그의 교토 퍼플 상가에서 데뷔,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PSV 아인트호벤을 거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시즌을 보내며 아시아 최고의 프리미어리거로 자리매김한 박지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4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좋은 선수생활을 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축구선수 박지성의 인생은 끝이지만 많은 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리고 보답할지에 대해 더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힌 박지성. 그의 14년간의 선수생활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 박지성, J리그 발판으로 월드컵 거쳐 유럽무대 진출까지
수원공고 졸업반이던 1999년, 대학에 지명받지 못한 박지성은 당시 명지대를 이끌던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2학년 때 명지대를 휴학하고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 J리그 무대에 데뷔해 3년 동안 맹활약하며 팀에 사상 첫 일왕배 우승컵을 안기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교토 퍼플 상가 소속으로 뛰던 당시 박지성의 축구인생을 바꿔놓은 시간이 찾아왔다. 바로 2002 한일월드컵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에서 막내뻘로 뛰게 된 박지성은 사상 첫 월드컵 4강 진출의 쾌거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후 히딩크 감독을 따라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해 유럽무대에 진출한 박지성은 이적 후 2시즌 동안 슬럼프를 겪었으나 2004-2005시즌 훌륭하게 부활하며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던 야유를 ‘위송빠레’로 바꾼 박지성의 극적인 ‘터닝 포인트’였다.
▲ 맨유의 박지성, ‘두 개의 심장’ 전설의 시작과 끝
아인트호벤의 에레디비지에 우승을 이끈 박지성이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EPL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에게 관심을 보내며 영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고, 박지성은 네덜란드를 떠나 잉글랜드 무대에 데뷔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눈여겨 본 시점은 명확했다. 아인트호벤에서 뛰던 2004-200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AC밀란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한 박지성의 모습이 퍼거슨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5-2006시즌 박지성은 맨유 유니폼을 입고 올드 트래퍼드에 섰다. ‘유니폼 판매를 위한 영입’이라는 비난도 쇄도했으나 박지성은 이후 7시즌 동안 변함없이 ‘맨유맨’으로 뛰며 이러한 비난을 불식시켰다.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이며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맨유에서 통산 200경기 출전(2012년 2월 6일)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그를 ‘유니폼 팔이’로 비꼬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7시즌 통산 205경기 출전, 27득점을 기록한 박지성은 맨유의 ‘두 개의 심장’으로 자신의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장식했다.
▲ QPR, 그리고 ‘친정팀’ 아인트호벤 복귀
2011-2012시즌이 끝난 후 박지성과 맨유의 결별 가능성이 점쳐졌다. 그리고 2012년 7월 9일, 박지성은 퀸스파크 레인저스(QPR)로 이적을 결정했다. 2012-2013시즌 팀의 주장으로서 화려하게 스타트를 끊었지만, QPR은 개막 후 16경기 무승으로 EPL 역대 시즌 개막 후 최다 무승 기록을 경신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 사이 박지성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팀 전력에서 이탈했고 QPR의 챔피언십 강등이 결정된 후 자신의 친정팀인 아인트호벤으로 1년간 임대 이적하게 됐다.
8년 만에 다시 복귀한 아인트호벤은 박지성을 따스하게 맞이했다. 발 부상으로 인해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최악의 영입’ 3위에 꼽히는 등 불명예도 겪었던 박지성은 부상에서 복귀한 후 아인트호벤의 상승세를 이끌며 팀에 유로파리그 출전 티켓을 안겼다. 아인트호벤과의 동행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지은 박지성은 QPR 복귀와 은퇴의 기로에서 은퇴를 선택하며, 2000년 프로 데뷔 이후 14년간 이어온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또 성실했던 한국 축구의 전설이 축구화를 벗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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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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