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현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기 전에도, 만난 후에도 '역린'에 대한 평은 조금씩 갈리지만 이 모든 것을 제쳐두고서라도 현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역린'에는 중용 23장이 나온다.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라, 그러면 변한다." 이게 중용 23장의 핵심이다. 영화에서 정조는 이를 설파한다. 기본도 모른 채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대신들에게도 설파하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싶었던 자기 자신에게도 설파한다.
극 중 정조를 연기한 현빈은 이 메시지가 정말 좋았단다. 중용 23장을 알기 전과 알고 난 이후의 행동도 달라졌단다. 지치고 힘들 때 이 구절을 떠올리면 힘이 나고 그래서 이 좋은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단다.

"모든 걸 떠나서 중용 23장이 주는 메시지를 많은 분들이 가슴에 새기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어려운 말이고 어떻게 보면 쉬운 말인데 그 말이 지치고 힘들 때 떠올리면 힘을 내게 만들더라고요. 실제로 최근에 일주일 넘게, 심지어는 하루에 20군데 '역린' 무대인사를 다닐 때 지치거나 힘들어지면 문득 그 구절이 생각이 나요. 그러면 힘이 나고요. 그 구절은 영화를 떠나서 많은 분들이 아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끝내고 현빈은 군대를 택했다. 2년 후, 그는 사극으로 돌아왔다. 특히나 로맨스물에 강세를 보였던 현빈이 생애 첫 사극을 복귀작으로 선택하다니. 의외의 행보라는 반응이 나왔다. 게다가 정조였다. 수없이 많은 작품에서 다뤄진 정조는 캐릭터의 희소성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인간적인 정조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현빈의 의중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역린'을 통해 그려진 정조는 암살 위협에 불안해하고 가끔은 신경질도 내며 하지만 대신들 앞에선 위엄있는,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 등장한다.
"다른 선배님들이 한 정조를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연기했는지 몰라요. 일부러 보지 않았던 것도 있죠. 그걸 보게 되면 따라할 것 같았거든요. 제가 그린 정조가 다른 작품들과 어떻게 다르게 표현됐는진 모르겠지만 인간적인 모습은 다른 작품에 비해 훨씬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쪽으로 중점을 뒀었거든요. 사극 톤을 잡는 것에 대해서도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진짜 매 장면마다 톤을 체크했던 것 같아요. 이랬을 땐 편안한 말투가 나와도 되고, 또 이럴 땐 위엄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들을 계속 체크했었죠."
그가 MBC 대표 드라마 PD, 이재규 감독과 손을 잡은 것도 화제였다. 브라운관에선 입증받은 감독이었지만 영화에선 아직 검증받지 않은 감독이었기에 현빈이 복귀작으로 이재규 감독의 입봉작에 함께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하지만 현빈에겐 걱정은 없었다. 모두가 '될까?'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때 그는 이재규 감독과의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역린'으로 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 감독님을 만났을 때, 그리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할때도 되게 진지하셨어요. 그리고 되게 빠져계셨어요. 모든 걸 쏟아부은 사람이란게 느껴졌죠. 그래서 믿음이 갔어요. 이만큼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고 열정이 있다면 다른 상황을 굳이 따지지 않았도 신뢰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래서 그 날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촬영하면서 느낀건 머릿속에 계산이 다 돼 있었다는 거에요. '이 장면은 편집을 했을 때 얼만큼의 시간이 나와야 하고' 이런 것들을 다 계산해 놓으셨어요. 그러다보니까 콘티북이 전화번호북 두께만 하기도 했죠(웃음). 그런 걸 보면서 '대단하시다' 생각했어요. 머릿속에 정리가 안돼있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그걸 해낸거보니까 대단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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