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외국인 타자 루크 스캇(36)이 기습번트를 대는 이색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상대 시프트를 역이용하겠다는 의지였다. 실패로 끝났지만 그만큼 극단적인 두산의 스캇 시프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스캇은 14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2-7로 뒤진 6회 세 번째 타석에서 3루 방향으로 기습번트를 댔다. 초구에 나온 기습번트였다. 결과는 아웃. 투수 이재우가 재빠르게 공을 잡아 1루로 던졌고 세이프가 되기에는 스캇의 발이 조금 느렸다.
그렇다면 왜 스캇은 기습번트를 댔을까. 스캇은 이날 첫 타석에서 적시타를 쳤고 두 번째 타석의 타구도 우중간 방향으로 크게 뻗어나갔다. 전날 복귀전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한 것에 이어 타격감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손목이 완전치 않긴 하지만 타격에는 무리가 없는 것도 사실. 여기에 4번 타자에게 바라는 것은 화끈한 한 방이다. 스캇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스캇은 기습번트를 댔다.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다.

두산의 극단적인 시프트 때문이다. 스캇은 잘 맞은 타구가 주로 우측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두산은 스캇의 타석 때는 시프트를 극단적으로 펼친다. 2루수는 사실상 1루수와 함께 우전안타성 타구를 막는 임무다. 유격수는 2루수의 원래 위치보다 더 뒤로 나가 외야에 선다. 우중간 타구를 막기 위한 방편이다. 3루수는 유격수의 자리에 위치한다. 이 경우 사실상 3루 쪽으로 빠지는 타구에는 속수무책이다. 그럼에도 두산은 2경기 연속 이런 시프트를 썼다. 통계에 입각한 판단이다.
타석에 서 있는 스캇으로서는 이런 시프트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3루 쪽이 휑하게 비어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법하다. 이날 기습번트도 이를 이용해 “어떻게든 살아나가겠다”라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만하다. 다만 타구가 3루보다는 좀 더 투수 앞으로 굴렀고 이재우가 처리할 시간이 있었다. 조금만 더 3루쪽으로 치우쳤다면 세이프였다.
현재 외국인 왼손 타자의 경우는 이런 시프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과거 로베르토 페타지니(전 LG)의 경우도 그랬다. 페타지니는 이런 시프트를 역이용해 3루쪽으로 기습번트를 대 성공한 기억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팀들은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확률을 선택하고 있다.
스캇의 이 기습번트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우선 긍정적인 면이다. 어찌됐건 살아나가고자 하는 스캇의 의지는 나쁘게 볼 것이 아니다. 성공 가능성도 충분했다. 여기에 이런 기습번트는 앞으로 상대의 과감한 시프트를 재고하게 할 여지도 있다. “스캇이 3루로 번트를 댈 수 있다”라는 판단이 서면 두산과 같은 극단적 시프트는 사용하기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2-7로 뒤진 상황에서 팀의 4번 타자가 단순한 출루로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는 점은 보는 관점에 따라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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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