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고질라’, 틴에이저 겨냥 괴수 영화인가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4.05.15 06: 33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할리우드 SF 괴수 영화의 빈약한 상상력이 비단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고질라’(가렛 에드워즈 감독)는 군데군데 고심의 흔적이 느껴진다. 방사능을 먹어치우며 일본과 하와이를 초토화시킨 뒤 핵폐기물을 저장해 둔 미국 본토까지 급습하는 괴 생명체와 이에 맞서는 인간들의 사투.
여기까지 얼개라면 그동안 수 백 번은 족히 봤던 설정일 테지만 ‘고질라’의 결말 만큼은 예상을 살짝 비껴간다. 어떻게 보면 다소 황당할 수 있는 허무 엔딩이지만 ‘To be continue’를 기약해야 하는 시리즈물로선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마치 ‘서로 다 아는 처지에 뭐 시간 끌 것 있냐’고 말하듯 시작 10분 만에 방사능 오염에 노출된 아비규환을 연출하며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 사고로 눈앞에서 아내를 잃은 브로디(브라이언 크랜스톤) 박사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일본에 혼자 남아 미국 정부의 음모를 밝히는데 여생을 보내고, 15년 후 미 해군이 된 그의 아들 포드(애런 존슨)는 아버지와 갈등을 빚다가 가족과 인류(정확히 미국 자국민)를 구하기 위해 위험에 자청한다. 추가 구출 작전 없는 임무에 자원, 고질라와 무토 제거에 투입된다.

과거 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장사에 한창일 때 실은 고질라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모종의 합의가 있었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역시 이를 은폐하기 위한 거래였다는 음모론은 다소 억지스러운 이 영화의 배경 화면. 전쟁 억지력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불붙은 각국의 핵 개발과 방사능과 폐기물이라는 심각성을 외면한 채 지어지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종족 번식을 위해 방사능을 먹어치우는 무토는 먹잇감을 찾아 하와이에 이어 샌프란시스코로 진격하지만, 전파를 무력화시키는 이들의 저항 탓에 인간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일찌감치 재난을 감지하고 이를 경고하는 박사(와타나베 켄)와 심드렁한 군부, 관료의 대립은 이번에도 답습된다. 여기에 사랑스런 아내와 미취학 자녀, 더 나아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주인공의 비장함과 페이소스까지 한 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세계 배급을 위해 가장 확실하고 검증된 흥행 공식을 따른 결과이겠지만 좀 더 세련된 접근법이 필요할 것 같다.
이런 괴수 영화의 미덕은 역시 볼거리다. 시각 효과 디자이너 출신 감독답게 고질라와 무토가 ‘그그그’ 괴성을 내며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사이에 놓고 맞붙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평화로운 하와이 오아후 본섬에 쓰나미가 닥치고 항공모함이 종이배처럼 구겨지는 컴퓨터 그래픽 역시 시선을 떼기 어렵다. 무토가 미 본토까지 습격하는 게 고작 짝짓기를 위해서라는 대목에선 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틴에이저를 겨냥한 킬링타임 영화로 비주얼 외엔 기대치를 낮추는 게 좋겠다. 요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탓인지 백악관은 언급되지만, 오바마는 나오지 않는다. 1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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