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컨디션)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수준)는 영원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FC의 영광을 이끈 빌 샹클리 감독의 말이다. 축구감독이 남긴 말이지만, 이제는 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를 넘어 생활의 여러 분야에 통용되고 있는 명언이다.
샹클리 감독의 말을 해석하면, 뛰어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는 그리 어렵지 않게 구분될 수 있다. 훌륭한 선수는 부진이 일시적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활약이 일시적이다. 가끔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다음 기회에 이를 회복할 수 있다면 클래스가 있는 선수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즌 유희관이 보여주는 투구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기량 향상에 의해 견고해진 기량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아직 5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는 하지만, 일각에서 우려했던 2년차 징크스는 나타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리그 다승 공동 1위인 동시에 평균자책점 5위인 선수를 1경기에서의 부진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무리다.
이번 시즌 유희관의 가장 큰 부진은 9일 잠실 삼성전에서 나왔다. 당시 유희관은 6⅔이닝 11피안타 8실점으로 부진했다. 이 경기 이전까지 6경기에서 자책점이 단 9점에 불과했던 유희관은 이 경기에서만 4개의 홈런을 맞은 것을 포함해 8실점했다.
하지만 8실점을 하게 된 배경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승부가 일찍 기울어진 탓도 있겠지만, 두산은 유희관이 7회 2사까지 책임지게 했다. 전체적으로 공이 높은 코스로 많이 향했던 유희관을 조기에 빼줬다면 8실점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컨디션이 나쁜 상황에서도 7이닝 가까이 버틴 것은 팀 불펜의 소모를 줄이는 데 기여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다음경기에서 유희관은 부진을 완전히 씻어내는 역투를 펼쳐 5승으로 다승 공동 1위에 올라섰다. 소화한 이닝은 이전 등판과 같은 6⅔이닝이었지만, 이번에는 3피안타 1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묶었다. 팀 타선의 폭발 속에 승리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이번 시즌 좋지 않은 흐름에 대비해 포크볼을 준비했다고 수차례 말했지만, 포크볼은 아직 꺼내지 않았다. 1경기에서 나온 나쁜 결과에 조급해하지 않고 포크볼을 아꼈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그만큼 유희관은 부진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았고, 그 여유가 다음 경기에서 호투로 나타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시즌 초 실질적 에이스 역할을 했다는 말로 유희관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최악의 성적을 반등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른 유희관은 비로소 진짜 에이스로 거듭났다. 이제 유희관의 호투는 단순한 상승세가 아니다. 기존의 자신에서 한 단계 올라선 선수가 보여주는 발전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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