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별' 김병욱 PD "앞으로 일일시트콤 안 한다"[인터뷰]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4.05.16 10: 24

'시트콤의 거장' 김병욱 PD가 진두지휘했던 tvN 일일시트콤 '감자별2013QR3'(이하 '감자별')이 지난 15일 120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작품은, 'LA아리랑'을 시작으로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그리고 '하이킥' 시리즈로 대중의 큰 지지를 받았던 김병욱 PD의 마지막 일일시트콤이 됐다.
"앞으로 일일시트콤을 하지 않겠다"는 김병욱 PD의 소신있는 발언은, 어쩌면 우리를 웃고 울렸던 대한민국 성공 일일시트콤의 영원한 '마침표'를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산고를 통해 인생의 마지막 일일시트콤인 '감자별'을 세상에 내놓은 김병욱 PD를 종로구 내수동에서 OSEN이 만나 인터뷰 했다.
# '지붕킥'은 80점, '감자별'은 70점

20% 중반대를 자체 최고 시청률 27.5%(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 '국민 시트콤'으로 까지 불렸던 '지붕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 당시 김병욱 PD를 만나 인터뷰 했던 적이 있다. 당시 그는 "이제껏 작품 중에 가장 만족도가 높다"고 말하면서도, 완성도와 만족도에선 스스로 80점을 매겼었다.
"'감자별'은 내게 70점이다."
'지붕킥' 크레딧에 기록됐던 '스텐레스(stainless) 김'이라는 닉네임은 스텐레스처럼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뜻과, 얼룩(stain) 하나 없는(less) '무결점'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내포했다. 닉네임에서 보여졌듯, 그는 대본과 연출, 편집에 있어 완벽주의자다. 그런 그가 '감자별'에 70점을 준 건 단순 산술적 10점차보다 더 많은 아쉬움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감자별'은 40부작이 적당하다. 분량도 늘어졌고, 완성도도 아쉬웠다. 스스로 80점짜리 대본이 되지 않으면 방송을 하지 않는데 이번엔 그러질 못했다. 물론 주관적인 점수다. 높아져가는 방송 퀄리티에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일종의 서비스 정신이다. 이걸 뒷바침하는 현실은 여전히 열악했고, 나이가 들면서 떨어진 내 체력도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tvN이 일일극에 도전한 건 '감자별'이 처음에 가깝다. 앞서 '노란복수초' 등 아침연속극이 있었지만, 아침드라마  대부분이 세트 촬영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야외 분량이 많은 본격적인 일일극은 '감자별'이 최초인 셈. 경기도에 마련됐던 세트장은 밤샘 촬영을 하는 배우들이 쪽잠을 잘만한 여유 공간도 없었고, 제작진이 촬영을 지휘할 부조정실의 역할은 중계차가 대신했다.
"A팀과 B팀이 겹치는 요일까지 감안하면 일주일에 7일간 야외촬영을 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작업한 촬영감독은 와이어까지 동원한 야외 촬영을 보고 '이걸 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혀를 내둘렀다. 세트촬영도 쉽진 않았다. 임시로 제작된 세트장은 방음이 되질 않아, 비가 오거나, 근처 마을 운동회라도 있으면 촬영을 중단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감자별'이다."
'감자별'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시청률은 1%대에 그쳤고, 이전 작품들처럼 화제를 낳지도 못했다. 하지만 꾸준히 작품을 시청했던 일부 마니아 층은 "이전 작품 못지 않은 수작이었다"고 평하기도 했으며, 종종 등장한 철학적인 내레이션, 인물들의 불명확하고 느린 관계의 진전 등은 문학적 양식이 스며든 듯한 느낌을 부여해 타 작품들과 차별선을 그었다.
# 대한민국 일일시트콤은 끝났다
과거 '순풍 산부인과'를 떠올려보자. 한정된 세트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들과, 인물들의 독특한 말투와 유행어만으로도 충분한 웃음을 유발했다. 지금 상황은 급변했다. 드라마들은 전보다 밀도 높은 대본으로 퀄리티 높은 작품들을 앞다퉈 쏟아내는 중이고, 자연스레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올라갔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일일시트콤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일일시트콤이라 게 우리나라만 있는 제작 형태다. 이전에 내가 이뤘던 성공들도 사실은 모두 기적에 가까운 일들이다."
실상 근래 몇년간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케이블에서 선보인 일일시트콤을 통틀어 보더라도 성공한 작품은 '하이킥' 시리즈가 유일하다. 외부에서 제 3자가 봤을 땐 만들기 쉬워보일지라도, 그만큼 구조적으로 성공 자체가 힘든 포맷이란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구조다. 앞으로 일일시트콤은 찍지 않겠다. 서운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또 어떤 다른 굉장한 분이 나와서 이 모든 것들을 뛰어넘어 일일시트콤을 성공시킨다면 모르겠지만, 단언컨대 난 이제 더 이상 죽어도 일일시트콤은 못 한다."
사실 김병욱 PD는 이제까지의 작품에서 단순 디렉터로서의 역할만 소화했던 게 아니다. 세트 촬영, 디테일 편집도 직접 소화했지만, 그가 정작 더 힘을 쏟았던 건 대본 작업이다. '작가'로서의 역할도 동시 수행하며 매 작품 대본작업에 깊이 관여해 왔던 그는 '감자별' 역시 모든 최종본을 직접 썼다고 했다.
"'감자별'에서 내 역할은 연출보다는 작가에 가까웠다. 회의를 통해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놉을 짜고, 그걸 작가들이 초고로 작성한다. 이후 작가들이 가져온 초고를 최종본으로 고치는 데 회당 하루씩을 소모한다. 금요일 직전까지 3일밤을 꼬박 샌 뒤 24시간 정도 세트녹화를 진행한다. 조명세팅 같은 걸 할 때 5분 정도씩 눈을 붙이는 게 수면을 대신했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스케줄이다.(웃음)"
'감자별'을 끝으로 일일시트콤에서 손을 뗀 김병욱 PD의 다음 행보가 궁금했다.
"이제까지 여러 복잡한 계약관계에 의해 움직였던 부분도 있다. 작품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 작품에 대해 의뢰가 들어오고, 차기작 내용을 고민했다. 그렇다보니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들었다. 이번엔 아니다. 120부작 일일시트콤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 수 있고 4부작, 8부작도 가능하다. 분량에 상관없이 어떤 생각이든 자유로이 가능하게 됐다. 그게 너무 소중하고, 기쁘다."
충분한 휴식으로 그 동안 소진했던 체력을 재충전하는게 우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내와 함께 국내외 여러 도시를 한 달 간격으로 머무르며 여행하겠다는 계획은, 그가 탄생시킨 시트콤 속 이야기만큼이나 기발해 보였다.
"조만간 제주도로 떠나 그 곳에서 한 달간 머무를 계획이다. 그 뒤 다음 한 달은 경주, 그 뒤 한 달은 뉴욕으로 일정을 잡아뒀다. 그 다음 도시들은 그곳에서 차차 생각하겠다. 예전부터 꿈만 꿔왔던 휴식 같은 여행이다. 충분히 쉬고 돌아와 다음 작품으로 만나뵙겠다."
gat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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