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계약(FA)제도에 과연 자유가 있나요?
프로농구 FA제도에는 두 가지 근본취지가 있다. 첫째는 선수가 원하는 구단과 계약을 맺도록 칼자루를 선수에게 쥐어주는 것. 두 번째는 활발한 선수이동으로 구단 간의 전력평준화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KBL의 이상한 FA제도는 두 가지 모두 찾아보기 힘들다.
▲ 원소속팀 우선협상, 꼭 필요한가?

KBL은 FA자격을 얻은 선수가 원소속팀과 우선 협상을 하고 재계약이 틀어지면 시장에 나오도록 하고 있다. FA(Free Agent)는 말 그대로 어느 팀과도 계약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행 KBL제도는 제한적 FA(Restrict FA)라고 봐야한다.
원소속팀에 우선권을 주면 FA선수는 재계약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다. 또 이 기간 동안 타 팀과 자유로운 접촉이 불가능해 자신의 시장가치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협상에 임해야 한다. ‘의리’와 ‘인정’에 의해 시장가치보다 적은 액수로 재계약을 강제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 2차 협상에서 타 구단이 해당선수를 잡으려면 무조건 1차 원소속팀 제시액보다 많은 금액을 불러야 한다. 선수권익을 보호하는 장치로 보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몸값보다 이적에 더 비중을 두는 선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소속팀과 거액에 협상이 틀어진 선수는 몸값을 낮춰 타 팀 이적이 불가하다. 선택의 폭이 굉장히 좁아진다는 뜻이다. 이를 악용해 원소속팀이 선수예상보다 높은 액수를 불러 타 팀 이적을 방해할 수도 있다. 3차 원소속팀 재협상에서 ‘괘씸죄’를 적용해 몸값을 대폭 깎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원소속팀의 재계약에 유리한 환경이라 사전접촉에 대한 의심도 끊이지 않는다. 타 구단에서는 탐나는 선수가 있어도 그 선수가 제대로 재계약을 진행하고 있는지 정보 없이는 영입이 불가능하다. 해당선수가 2차 협상에 나온 다음에 대응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미 늦기 때문. 또 구단끼리는 사인&트레이드 등을 시도하기 위해 정보를 주고받지만, 정작 해당선수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선수가 팀을 고를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럴 바에야 원소속팀 우선협상을 없애고, FA공시와 동시에 10개 구단이 일제히 투명하게 영입전에 뛰어드는 것이 낫다. 선수의 시장가격이 폭등할 수 있지만, 어차피 샐러리캡이라는 안전장치가 있다. 구단들이 이를 반대하는 이유는 스타선수를 오랫동안 붙잡기 위해서다. 또 KBL이 ‘뒷돈’을 제대로 적발하지 못해 샐러리캡의 실효성도 의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 이적에 발목 잡는 지나친 보상조건
올해 FA협상에서 1차에서 재계약을 맺은 선수는 대상자 47명 중 20명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문태종(보수 6억 6000만 원/1년), 김태술(보수 6억 2000만 원/5년), 양희종(6억 원/5년), 함지훈 (5억/5년) 등 대어들은 모두 재계약서에 사인했다. 물론 김태술, 이광재 등은 향후 타 팀으로 트레이드 된다. 반면 송창무 등을 포함해 협상이 결렬된 17명 중 스타급은 아무도 없다. FA시장에 나오더라도 파장이 크지 않다.
FA일정은 한참 남았지만, 각 팀의 전력보강은 사실상 끝났다. 이미 사인&트레이드를 통해 차기 시즌 전력보강을 마친 상태다. 각 구단들이 FA영입보다 사인&트레이드를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막대한 보상출혈 없이 원하는 선수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KBL 규정상 35세 미만 보수서열 전체 30위 이내의 자유계약선수와 계약을 체결할 경우 보상선수 1명+자유계약선수 전년 보수의 50% 또는 자유계약선수 전년 보수의 200%를 내줘야 한다. 스타급 선수를 데려오려면 너무 출혈이 크다.

KCC가 지난 시즌 4억 8000만 원을 받았던 김태술을 2차 협상에서 데려오려면 얼마가 필요했을까. 타 팀과 경쟁이 붙어 보수 6억 2000만 원에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소 1억 이상은 더 얹어줘야 한다. 여기에 KGC에 보호선수 제외된 선수 한 명 + 2억 4000만 원을 주든가 아니면 현금 9억 6000만 원을 줘야 한다. 더구나 강병현은 보상선수로 데려오기 어려운 스타급 선수다. KCC와 KGC 모두 사인&트레이드를 통해 훨씬 적은 돈으로 원하는 선수를 얻은 셈이다.
이제 KBL 10개 구단 중 누구도 보상선수와 보상금을 줘가며 스타선수를 영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보상제도는 오히려 자유로운 이적을 막는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럴 바에야 보상제도는 없애는 편이 낫다.
▲ KBL규정 비켜가는 사인&트레이드
KBL은 자체 계산한 공헌도를 바탕으로 매년 포지션랭킹을 매기고 있다. 가드와 포워드 포지션은 랭킹 5위 내의 선수 두 명을 동시 보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센터는 3위 내 2명 보유금지다. 이는 FA이적을 막는 또 다른 장애물이다. 이것저것 다 따지다보면 실제 선수가 갈 수 있는 팀은 얼마 되지 않는다. ‘누구와 뛰고 싶다’는 것은 선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김태술은 누구나 인정하는 프로농구 최고 포인트가드다. 하지만 지난 시즌 부상결장이 잦아 포지션랭킹이 15위에 불과했다. 결국 김태술은 KCC로 이적해 국가대표 김민구와 백코트를 이루게 됐다. KBL의 포지션랭킹에 허점이 많다는 뜻이다. KBL은 가드로 뛰는 선수를 포워드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제 각 팀은 FA 2차 협상은 무시하고, 사인&트레이드로 전력보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인&트레이드는 일종의 사전접촉으로 볼 수 있어 문제소지가 있다. 또 트레이드를 하려면 상대가 원하는 카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하위권 팀의 경우 샐러리캡 여분은 충분하지만, 반대급부로 내줄 선수가 없다. 이럴 경우 스타급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매우 불리하다.
김태술은 최고연봉을 고집하지 않고 우승이 가능한 KCC로 이적했다. 선수 본인의 의사는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특정구단은 김태술에게 거액을 제의해 볼 기회자체도 잡지 못했다. 팀 전력이 떨어져 사인&트레이드에 뛰어들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1차에서 이미 계약이 끝나면서 김태술을 노린 다른 팀들은 영입의향서를 제출해보지도 못했다. 적어도 10개 구단에게 동등하게 선수에게 베팅할 기회를 준 뒤, 선수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맞다.
김태술이 이런 결정을 한 또 다른 이유는 자칫 2차 협상에 나왔다가 구단선택권을 박탈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KBL은 복수의 타 구단이 영입의향서를 접수할 시 이적 첫해 연봉 최고액 기준으로 10%이내의 연봉제시 구단 중 선수가 선택하도록 규정했다. 반대로 특정 구단이 거액을 배팅하면 단독입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지난 해 LG가 문태종에게 6억 8000만 원을 제시해 경쟁 없이 그를 잡았던 전례가 있다.

▲ 선수권익은 언제쯤 보호되나?
한국프로농구는 대리인(에이전트)에게 협상자격을 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선수가 다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선수들이 계약내용을 100% 이해하고 사인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다.
구단의 압력에 밀려 이적의사 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선수도 있다. 트레이드 된 선수들도 구단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짐을 싸는 경우도 많다. 스타급 선수가 아닌 보통선수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하다.
매년 팬들은 비시즌 화끈한 선수이적과 전력보강을 기대한다. 하지만 FA제도에 허점과 현실적 제약이 너무나 많다. 매년 FA시장이 잠잠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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