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선발이 끌어주고 타선이 밀어주는 이상적인 그림이 계속 나온다. 그러나 숨은 힘 하나를 무시할 수 없다. 바로 탄탄한 수비력이다. 팬들에게는 리그 최고의 수비수, 타 팀 팬들에게는 악마의 수비수들이 두산을 지탱하고 있다.
두산은 1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NC와의 경기에서 8-3으로 이기고 6연승을 질주했다. 최근 팀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타선이 상대 에이스이자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이재학마저 무너뜨린 경기였다. 홈런이 세 방이나 나오며 화끈한 장타쇼를 선보였다.
그런데 경기 후 송일수 감독의 멘트는 다소 특별했다. 송 감독은 “타격도 타격이지만 오재원을 중심으로 정수빈 김재호가 수비를 잘 해줘서 투수들을 편하게 해줬다”라고 말했다. 결정적인 호수비를 펼쳐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던 정수빈에 대해서는 “타격감은 떨어졌지만 3할 타자 그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다”라고 극찬했다. 공격보다는 수비를 승리의 원동력으로 본 것이다.

송 감독의 이런 말은 틀리지 않다. 송 감독은 연승 기간 중 “타격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라고 잔뜩 경계심을 드러냈다. 실제 타격은 사이클이 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다. 지금 두산 타선은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이 절정에 있는 상황이다. 분명 떨어질 때가 온다. 하지만 수비는 상대적으로 슬럼프를 덜 탄다. 마운드나 타선이 좋지 않을 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것도 수비다. 개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고 여기에 조직력까지 좋은 두산이 최근 몇 년간 순위표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실제 두산 선수들은 수비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안타를 못 치는 것보다 잡을 수 있는 타구를 놓친 것에 대해 더 아쉬워하는 선수들도 있다. 내야 수비의 핵인 오재원 같은 선수들이 대표적이다. 선수들 전체가 수비에 대한 중요성을 공유하고 있고 호흡도 잘 맞는 편이다. 내야 시프트는 상징이다.
두산은 상대 타자에 따라 가장 적극적인 시프트를 거는 팀으로 유명하다. 극단적인 수비도 마다하지 않는다. 실제 SK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외국인 타자 루크 스캇 시프트가 혀를 내두르게 했다. 내야수들이 전체적으로 ‘우향우’했다. 3루수가 유격수 자리에 위치할 정도였다. 선수들의 기본 수비력, 풍부한 데이터에 대한 확신, 그리고 이런 시프트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조직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시프트는 모두 선수들의 머릿속에서 나온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송일수 감독은 사실 화려한 시프트를 선호하는 스타일의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의 수비력에는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송 감독은 “수비코치와 선수들이 상의해 시프트를 짠다.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 난 결과에만 책임을 지면 될 뿐”이라고 했다. 그만큼 두산 선수단이 수비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비는 장기 레이스를 이끌어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최근 들어서는 강팀과 약팀의 차이를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수비가 잘 되는 팀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마운드의 투수들은 수비를 믿고 좀 더 자신있게 투구를 할 수 있고 수비가 잘 되면 타석에서도 신바람이 난다. 흔들리지 않는 두산 수비가 있는 이상 두산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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