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그레인키(31, LA 다저스)의 꾸준한 활약이 계속되고 있다. 2자책점을 넘게 준 경기를 기억하기가 이제는 쉽지 않을 정도다. 이 부문에서 메이저리그(MLB) 기록을 가지고 있던 로저 클레멘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 가운데 타격감도 살리며 공·수 만능 선수로서의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그레인키는 17일 미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 필드에서 열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동안 5피안타 2볼넷 6탈삼진 무실점의 역투를 선보이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 승리로 그레인키는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먼저 7승(1패) 고지를 밟았다. MLB 전체로는 마크 벌리(토론토)에 이어 두 번째다.
침체된 팀 분위기를 되살리는 역투였다. 개인적으로도 몇몇 의미가 있었다. 그레인키는 이날로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21경기 연속 2자책점 이하 경기를 기록했다. 당초 그레인키의 이 기록은 ‘5이닝 이상 2자책점 이하’로 초점이 맞춰졌으나 지난 6일 워싱턴과의 경기에서 비가 경기를 중단시키는 바람에 씻겨 내려간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미 언론들은 그레인키의 이 기록을 조명하며 “로저 클레멘스의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라고 보도했다.

로저 클레멘스는 지난 1990년 7월 3일부터 1991년 5월 13일까지 21경기 연속 ‘2자책점 이하’ 경기를 기록했다. 그레인키는 2013년 7월 30일부터 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에 의하면 클레멘스의 해당 기간 성적은 15승3패 평균자책점 1.05였다. 7차례의 완투, 5차례의 완봉이 끼어 있었다. 그레인키의 해당 기간 성적은 14승2패 평균자책점 1.76이다.
그레인키의 이닝소화(133이닝)이 클레멘스(162⅔이닝)보다 적고 완투나 완봉이 없었다는 점에서 클레멘스의 기록을 더 높게 평가하는 시선이 우세하다. 여기에 클레멘스는 타자 친화적인 팬웨이 파크를 홈구장으로 썼으며 지명타자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에서 뛰었다는 점에서 그레인키보다는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레인키의 기록이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현 시점에서 그레인키의 기록은 추격자조차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LA 다저스와 계약한 뒤 그레인키는 231이닝을 던지며 22승5패 평균자책점 2.49를 기록해 거액의 몸값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그레인키의 최근 25경기 평균자책점은 1.74다. 이는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의 최근 25경기 평균자책점(1.71)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 왜 다저스 선발진이 높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한편 그레인키는 이 기록을 수립한 애리조나전에서 타격감까지 회복하는 부수적인 수입을 얻었다. 최근 타격 부진에 다소간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던 ‘투수’ 그레인키는 이날 4타수 2안타를 기록해 오래간만에 멀티히트 경기를 신고했다. 지난해 3할2푼8리의 타율을 기록해 내셔널리그 실버슬러거를 수상했던 그레인키는 올 시즌 타율을 2할5푼으로 끌어올렸다. 그레인키의 표정에는 비로소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타율은 지난해보다 떨어졌지만 벌써 3개의 2루타를 날리는 등 장타율(.438)은 지난해(.379)보다 높아졌다. "그레인키가 선발 등판하는 날에는 타순 변화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말도 마냥 우스갯소리는 아니다. 17일 현재 다저스의 올 시즌 8번 타순 타율은 2할1푼4리, 장타율은 3할5푼1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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