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5일은 이창욱(30, SK)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8년을 기다린 끝에 첫 1군에 등록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감격은 5일도 채 되지 않아 깨졌다. 단 1경기도 뛰지 못한 채 2군으로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아쉬움이 진할 법했다. 언제 다시 이 무대로 올라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창욱은 “실망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준비를 더 많이 하자’라며 마음을 다잡았다”라고 떠올렸다. 8년을 기다렸는데, 좀 더 기다리지 못할 것도 없다는 심정이었다. 1군에서 느낀 보완점을 2군에서 집중적으로 다듬으며 또 한 번의 기회를 기다렸다. 그런 와신상담이 빛을 발했던 것일까. 2014년 5월 17일. 이창욱은 프로 데뷔 후 두 번째 1군 경기에서 감격적인 데뷔 첫 승을 따냈다. 경기 후 이창욱은 “아이들이 아빠가 던지는 것을 보면서 이길 수 있도록 많이 기도했다고 하더라”며 모든 소감을 대신했다.
이창욱은 17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4-4로 맞선 연장 11회에 등판해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팀이 12회 마지막 공격에서 4점을 내며 역전에 성공, 이창욱은 팀 연패탈출의 공신이 됨은 물론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프로 데뷔 후 8년 만에 찾아온 1군 무대 승리였다. 이창욱은 “사실 2이닝을 던질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첫 경기(15일 문학 두산전)에서 배운 것이 있으니 오늘만큼은 더 집중해서 던지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값진 1승이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프로선수치고 사연이 없는 선수는 없겠지만 이창욱도 고생을 많이 한 케이스다. 군산상고와 고려대를 졸업하고 SK에 입단한 이창욱은 파란만장한 시기를 겪었다. 입단하자마자 아파온 어깨는 그의 발목을 계속 잡았다. 어깨 수술을 받았고 군대에 다녀왔지만 제대 후에도 어깨 상태는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동기들이 1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이창욱은 김경태 재활코치와 함께 기초동작부터 다시 만들고 있었던 투수였다.
그런 이창욱은 지난 교육리그부터 구위가 급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1군 코칭스태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창욱은 “지난해와는 심리적인 측면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교육리그에서 가서 많이 배웠다. 기술적인 부분을 채워 넣었고 무엇보다 좋은 생각을 가지는 방법을 배웠다”라고 달라진 점을 설명했다. 주무기인 체인지업도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서서히 터득했다. 그렇게 이창욱은 전지훈련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았고 결국 1군 데뷔에 이어 첫 승까지 이뤄내는 드라마를 썼다.
이런 이창욱의 고생을 알고 있는 까닭일까. 주위에서 축하가 쏟아졌다. 경기 후 SK의 모든 선수들이 이창욱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고 첫 승 기념구도 챙겨줬다. 전화도 많이 왔다. 이창욱은 “아내와 짧게 통화를 했는데 아내가 더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며 싫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 오래간만에 아내와 6살, 4살짜리 두 아들에게 가장의 몫을 한 것 같아 뿌듯한 심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김경태 코치님께 정말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라고 말한 이창욱은 이내 감상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이창욱은 아직 자신이 1군 투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노력하겠다는 각오다. 이창욱은 “보직은 물론 경기 출전에 대한 보장이 없지 않는가. 나갈 상황이 되면 최대한 많은 타자와 이닝을 소화한다는 생각으로 던지겠다. 어차피 빡빡한 경기에 나가는 것은 아니니 주축 선수들이 쉴 수 있게끔 이닝을 길게 가져가며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창욱이 만들어나가는 드라마가 첫 승과 함께 좀 더 빠르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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