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칸(프랑스) 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제67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끝까지 간다’(김성훈 감독)가 18일 오전 9시(현지시간) JW 메리어트 씨어터 크로와제에서 첫 상영된다. 독창성을 우선순위에 두는 비경쟁 부문 감독주간은 봉준호의 ‘괴물’이 초대받은 섹션이기도 하다. ‘A Hard Day’로 해외 관객과 처음 만나는 ‘끝까지 간다’가 국내의 호평을 이어갈 지 관심이 모아진다.
흔히 시나리오 잘 빠졌다고 소문난 영화의 운명은 두 갈래다. 높은 기대치 탓에 보고 나면 ‘생각 보다 별로’이거나, 시나리오를 뛰어넘는 수작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후자인 ‘끝까지 간다’는 체지방 0%에 비견될 군더더기 없는 연출과 배우들의 명연기가 서로 임자를 만났다.
적재적소마다 터지는 유쾌한 웃음 코드와 극적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수준도 예사롭지 않다. 왜 이런 재능 있는 감독이 7년 반이나 근로 소득이 없었는지 의아할 정도다. 스릴과 서스펜스, 액션과 유머가 공존하는데 서로 엇박자가 나지 않고 한데 잘 버무려진 느낌이다. 여러 장르가 서로 잘 났다고 튀기 보단, 각자 반음씩 양보하며 듣기 좋은 화음을 만들어냈다.

‘체포왕’ 이후 더 보여줄 게 있을까 싶던 이선균은 ‘끝까지 간다’에서 이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펄펄 난다. 맞춤 정장을 잘 다려 입은 것처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범위 안에서 호연을 펼쳤다. 히스테릭하면서 어딘가 허술한, 그래서 인간미 넘치는 역할을 이선균 만큼 잘 체화해내는 배우는 많지 않다. 안타고니스트 역의 조진웅 역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할 만큼 서늘한 연기로 만족감을 준다. 기본기가 잘 닦인 건 알았지만, 역시 배우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스크린을 압도했다.
‘끝까지 간다’는 설계도부터 영리했다. 상투적인 형사물에서 벗어나 강력반 비리 형사와 악질 교통계 경찰의 충돌로 1차적 흥미를 자아낸다. ‘공공의 적’처럼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대결을 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덜 나쁜 범죄자를 응원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두 번째 포인트는 시체를 둘러싼 쟁탈전. 모친상을 당한 형사 고건수(이선균)는 음주 운전으로 어이없는 사망 사고를 내고 증거 인멸을 위해 시체를 차 트렁크에 숨긴다. 문제는 교통경찰 박창민(조진웅)이 자신의 마약 범죄를 은닉하고 수백억을 손에 쥐기 위해선 이 시체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 둘은 서로 시체를 빼돌리고 되찾기 위한 격렬한 레이스에 돌입한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사체를 유기한 건수가 택한 다음 행동은 자수가 아닌 완전 범죄다. 강력반에서 갈고 닦은 수사 기법이 자신의 범죄 은닉을 위해 동원되는 모습이 꽤나 설득력 있다. 설상가상으로 감찰반 내사와 뒷돈을 나눠 쓰던 동료들의 배신까지 견뎌야 하는 건수의 안간힘과 사투가 애처로우면서 흥미롭다.
트렁크 속 시체를 장례식장 시체 안치실로 몰래 들여오는 장면에선 가장 많은 웃음이 터졌다. 초상 치르는 상주가 이렇게 많은 관객을 웃긴 적이 있었던가 싶다. 속으로 ‘저게 말이 돼?’ 싶으면서도 범행을 들킬까 봐 혼자 식은땀을 흘리며 낮은 포복 군인 장난감을 원격 조종하는 건수를 보며 외대 헝가리 전공자 출신 감독의 내공이 느껴졌다.
감독은 건수가 환풍구에서 생쇼를 벌이는 동안, 장례식장 밖에서 흡연중인 여직원과 관속 십자가, 고인의 휴대폰 벨소리 등 소소한 소품과 장치를 통해 집중도를 높여간다. 교통사고 현장을 유일하게 목격(?)한 의문의 강아지를 비롯해 뭔가 복선이 있을 것 같은 물건과 대사, 상황을 쉴 새 없이 보여주며 관객을 화면에 빠져들게 한다. 결국 이런 디테일이 관람 후 평점을 올릴 뿐 아니라, 까다로운 칸으로부터 초청장을 받게 된 배경일 것이다.
공권력을 비꼬는 현실 풍자도 잊지 않는다. 경찰들이 청장을 모셔놓고 신형 폭탄을 시연하는 장면에서 불량식품, 성폭행 등 앙증맞은 4대악 인형을 등장시켜 적잖은 웃음이 터졌다. 순찰차만 보면 가슴을 졸여야 하는 형사와 마약을 빼돌린 뒤 유유히 경찰 제복을 갈아입는 아이러니와 함께 이런 세련된 유머 코드가 적절하게 섞이며 흥미지수를 높였다.
이 영화의 속도감과 청량감의 절반은 김태성 촬영감독의 땀 덕분일 것이다. ‘최종병기 활’ ‘명량’ 등을 찍은 김태성 감독은 기존의 익숙한 앵글에서 벗어나 새로운 촬영 기법을 시도하는 걸로 유명하다. 달리는 말 앞발에 DSLR 카메라를 설치하거나, 배우들과 함께 뒹굴며 렌즈를 들이대는 식이다. 이번에도 저수지 침수 직전 조진웅의 차량 폭파와 아파트 난투극 장면도 김태성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결과다. 시각적 쾌감을 위한 욕심 때문에 종종 조명 기사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지만, 이런 ‘끝까지’ 정신이 똑똑한 상업 영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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