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LA(미국 캘리포니아주), 박승현 특파원] 클레이튼 커쇼(26, LA 다저스)가 무너졌다. 그것도 아주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18일(이하 한국시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 선발 등판한 커쇼는 불과 1⅔이닝 동안 3루타 3개 포함 6안타 볼넷 2개로 7실점 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2010년 5월 5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1⅓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 5피안타, 2볼넷으로 7실점 한 이후 가장 빠른 강판이다. 2012년 7월 25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5⅔이닝 동안 7피안타로 8실점 한 후 최다 실점 기록이기도 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부상 복귀 후 커쇼는 이전의 커쇼가 아니다?
커쇼는 3월 22일 호주개막전 등판 후 대원근 염증으로 6주 정도 등판을 걸렀다. 메이저리그 경기에 복귀 하기 전 2차례나 마이너리그 재활등판을 갖는 등 복귀를 위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았다. 커쇼 자신은 하루라도 빨리 복귀하고 싶어했지만 돈 매팅리 감독 등 코칭 스태프, 메디컬 스태프는 무리한 일정 대신 보다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다.
커쇼의 복귀전은 성공적이었다. 지난 7일 워싱턴 내셔널스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하지만 당시 걸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안타를 9개나 맞았다는 점이다. 커쇼는 2010년을 제외하고 매년 9안타 이상 허용한 경기가 한 번씩 있었다. 그런데 그 1년에 한 번 있는 일이 하필이면 복귀전에서 일어난 셈이다.
복귀 후 2차전인 12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도 커쇼 답지 않은 모습이 보였다. 7회 브랜든 힉스에게 역전 2점 홈런을 맞을 때 구질이다. 당시 커쇼는 볼카운트 2B에서 구속 74마일 커브를 던지다 홈런을 허용했다. 커쇼가 정규시즌 경기에서 커브를 던지다 홈런을 맞은 것은 이 때가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18일. 2회 마운드에 선 커쇼는 커브든 직구든 모두 얻어 맞았다. 모두 장타로 연결된 점도 심상치 않다. 지난 해 커쇼가 허용한 3루타는 모두 3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이닝에 다 맞았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많은 3루타를 허용한 것은 2010시즌으로 모두 4개였다.(경기 후 커쇼가 다시 아프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체이스 필드 징크스?
커쇼는 18일 등판 전 체이스 필드에서 4연패를 기록 중이었다. 2011년 7월 16일 승리를 거둔 후 4경기 등판에서 모두 패전투수가 됐다. 승패 없이 물러난 적도 없다. 등판하는 대로 모조리 패전을 기록했다. 18일 패전이 확정되면 체이스 필드 5연패를 당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커쇼의 데뷔 후 체이스 필드 전적은 3승 5패에 평균자책점 3.00이다. 커쇼의 애리조나전 상대 전적이 8승 6패이니 체이스 필드 이외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5승 1패로 절대 우위를 보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2차례 사이영상에 빛나는 커쇼지만 체이스 필드의 성적은 메이저리그의 평범한 선발 투수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일시적인 난조?
투수는 잘 정비된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마치 무엇엔가 홀린 듯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가 있다.
18일 마운드에 오른 커쇼는 1회는 불과 10개의 투구로 수비를 끝냈다. 그것도 크리스 오윙스와 폴 골드슈미트, 상대 2,3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쾌투였다.
하지만 2회 선두타자 코디 로스에게 연속해서 볼만 4개를 던지면서 진루를 허용했다. 이 볼넷은 커쇼가 21⅓이닝 만에 허용한 볼 넷이었다. 3월 22일 애리조나전 3회 2사 후 애런 힐에게 볼 넷을 내준 뒤에는 볼넷을 기록하지 않았다. 커쇼는 로스에게 빠른 볼 3개, 슬라이더 1개를 던졌지만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지 않았다. 제구가 난조에 빠진 것이다.
이후 커쇼가 타자 일순을 허용하면서 뭇매를 맞는 동안 대부분의 볼이 스트라이크 존 높은 곳에서 형성됐다. 무지개로 표현되는 그림 같은 커브도 높게 들어가 장타로 연결됐고 빠른 볼 역시 높으면서도 복판 쪽으로 몰리기 일쑤였다. 커쇼는 타순이 한 바퀴 돈 뒤 로스에게 다시 한 번 볼 넷을 내주고 말았다.
이날 커쇼의 패스트볼은 94마일, 슬라이더 85마일, 커브 74마일 안팎을 찍었다. 평소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수치다. 일시적인 제구력 난조로 부진을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절대 의심할 수 없는 것
커쇼는 다저스 선발 투수 중 누구보다도 연봉이 많은 선수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훈련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늘 필드에 가장 먼저 얼굴을 보이는 선수이고 투수 중(아마 타자까지 포함해서도) 가장 많은 러닝을 소화한다.
정해진 루틴을 어기는 법도 없다. 선발 등판한 바로 다름 날에도 어김 없이 롱토스까지 소화한다. 이번 등판을 앞두고도 15일 커쇼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불펜에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적어도 커쇼가 훈련을 게을리 했다거나 준비를 소홀하게 했다는 것은 부진의 이유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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