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칸(프랑스) 김범석의 사이드미러] 18일 지중해 휴양도시 칸에서 배우 송혜교를 만났습니다. 10여 명의 한국 기자들과 해변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파라솔 펼쳐놓고 에비앙 생수를 앞에 두고 한 시간 가량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기자는 지난 2008년 중국 영화 ‘태평륜’ 제작발표회 참석차 처음 칸을 찾았던 송혜교를 6년 만에 다시 같은 곳에서 마주했습니다. 물론 금쪽같이 바쁜 글로벌 스타는 이를 기억하지 못 합니다. 당연합니다. 이번엔 촬영을 끝낸 ‘태평륜’ 홍보를 위한 재방문이더군요. 중국이 아무리 만만디의 나라라지만, 6년 만에 영화 촬영을 끝내다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도 세월의 무심함을 느꼈던 걸까요. “요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얘기가 있어요. 더 나이 들기 전에 무협 영화 한번 도전해보려고요”라며 웃음을 자아내더군요. 1982년생이니 그녀 나이 벌써 계란 한판이 넘었습니다.

송혜교는 이날 ‘일 욕심’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쓰며 본업에 대한 강한 의욕을 내비쳤습니다. 기자들이 묻기도 전에 “사람들이 잘 모르시는데 저 한국 활동 안 쉬고 열심히 해요. 작년엔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했고, 강동원씨랑 찍은 영화도 얼마 전에 끝났거든요. 추석에 개봉해요”라며 근황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을 비워두고 중국 활동에만 올인하는 게 아니라는, 일종의 억울함 섞인 어필일 겁니다.
하지만 영화 쪽에서 송혜교는 이정향 감독의 ‘오늘’(2011) 이후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활동 뜸한 배우로 기억돼 있습니다. 섭외야 여전하겠지만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에 이어 오우삼의 ‘태평륜’까지 중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다 보니 스케줄 때문에 불발된 한국 영화가 여럿일 겁니다. 투자가 여의치 않아 한때 엎어질 뻔한 ‘태평륜’은 남자 배우가 교체되는 진통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죠. 송혜교는 “저도 사람인데 촬영 도중 마음고생도 많았어요. 엎어질 뻔한 위기도 있었거든요”라며 짧은 한숨으로 고단했을 심경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칸에 와있는 전도연은 한국 영화만으로 심사위원까지 됐는데 굳이 중국 활동에 열심인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중국을 무대로 삼겠다는 거창한 포부나 계획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어요.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뤄진 거예요”라며 “제가 스무 살 때부터 운 좋게 중국 쪽에 알려졌고, 무엇보다 할리우드 쪽은 제가 영어가 안 돼서”라고 말끝을 흐려 좌중을 또 한 번 웃겼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에 충실한, 생각보다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질문에는 “영화 얘기 하다가 왜 갑자기 제 사생활을 물으시죠? 관심 끊어주시면 안 될까요”라며 기자를 머쓱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그쪽으론 굳은살이 박일 만큼 시달렸을 그녀이기에 금세 미안한 생각이 스치더군요. 그런 마음까지 헤아렸는지 그녀는 “지금 만나는 사람은 없어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요즘은 더 좋은 배우로 성장하기 위한 생각밖에 안 해요.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요”라고 답해줬습니다.
왕가위, 오우삼 모두 훌륭한 감독임에 틀림없습니다. 좁은 내수 시장에 안주하기보다 중국, 미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겠다는 생각에 태클을 거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한때 장동건과 전지현 같은 좋은 배우가 할리우드에 꽂혀 여러 시도를 했지만 공들인 시간과 비용에 비해 돌아온 성과는 미미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것마저 좋은 예방접종이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송혜교 같은 국보급 배우가 지금보다 더 많은 한국 영화에 출연해 감동을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건 비단 기자 한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겁니다. 한국엔 기형적으로 여주인공 영화가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이런 비루한 현실만 탓하기엔 그녀가 가진 재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혹시 한국 영화인들이 흥행작이 적다는 이유로 송혜교라는 브랜드를 과소평가 하는 건 아닌지도 우려스럽습니다. 그녀의 대체 불가능한 연기가 중국이란 옆 나라 윈도를 통해 세계에 알려진다면, (축복스런 일이겠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좀 상할 것 같습니다.
bskim01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