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배우 마동석의 변신 중 가장 묵직하다. 영화 '일대일'(김기덕 감독, 22일 개봉)에는 마동석이 지닌 기존의 모습과 새로운 면모가 뒤섞여 있다. 마동석 특유의 만들어진 대사가 아닌 듯한 자연스러운 딕션은 문어체 대사 속에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딱딱함 속에 울림이 있고, 경직됨 안에서도 코믹한 부분이 있다. 무심히 던지는 몇 개의 대사는 여전히 마동석이 했기에 보는 이를 웃게 만든다. 누군가를 처단하는 그림자의 리더. 일곱 번에 걸쳐 비주얼 변신을 하며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자백을 받아내는 그는 혁명가 혹은 테러리스트다. 마동석은 이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새로운 경험이었고, 평생 안 하던 말투로 연기를 해 봤어요. 대사 하나하나에 중요한 의미들이 담겨있어서 애드리브 같은 것은 전혀 생각 할 수 없었어요. 판타지이지만 우리 주변의 실제 이야기일 수도 있죠. 그림자란 캐릭터를 이해하고 연기하기가 저 역시도 쉽지 않았습니다."

마동석이 분한 그림자는 길들여지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각하고 날을 세운다. '익힌 음식'을 먹지 않고 혼자 외딴 섬 처럼 사는 알 수 없는 사람. 비범함도 독특함도 갖고 있지만 잔혹함 역시 존재한다. 어떤 이는 그를 보고 폭력적이라 할 것이고, 어떤 이는 감정 이입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마동석은 이 모든 면을 지닌 그림자를 스폰지처럼 빨아들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냈다.
"대사량이 어마어마 하던데"라고 운을 뗐다. 그러자 마동석은 "날씨가 춥고, 대사량이 어마어마하고, 매일 한 시간씩 정도만 자고 나가도 다음날 찍을 엄청난 양의 대본이 있었어요. 더욱이 대본이 하루 만에 다 바뀌는 경우가 많아 그걸 전부 다 다시 외워야하는 어려움도 있었죠"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하지만 덧붙인 말. "그런데 그것을 다 이겨야 할 정도로 이 캐릭터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어요." 왠만하면 힘들다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마동석이다. 하지만 이 힘듦이 그에겐 짜릿한 도전이었다.

기자가 이 작품을 두고 "상징으로 가득 찬 영화"라고 표현하자 마동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국과 연관도 되고, 꼭 요즘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살아 온 각 시대마다 상황이 겹쳐지는 일들이 있었을 거예요. 어떤 시대, 어떤 사건을 꼬집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나아가 사람사는 세상의 보편적인 무언가를 들춰내는 영화죠."
김기덕 감독과 마동석의 만남. 그 소식에서부터 이 영화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 궁금증을 모았다. 영화 '배우는 배우다'에 출연한 인연이 이 작품으로 이어지게 됐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원래 좋아했다는 그다. 둘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듯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면 분명 그들만의 소통 방식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기덕 감독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그는 "느낌이 오면 정말 금방 책을 쓰시는, 그런데 머리 보다 오히려 손이 느린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많으신, 거기에다가 발명에도 소질이 있는, 정말 따뜻하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설명 만으로도 귀가 쫑긋해지는, 궁금해지는 사람이다.
"세계적인 거장이신 이유가 있죠. 분명 존경할 만한 감독님이고, 제가 작품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몰랐는데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되게 따뜻하게 잘 해주세요. 정말 기발하고, 기본적으로 타고난 감각이 있으세요. 예술적인 면으로요."
연기 역시 배우에게 영역을 열어줬다고 한다. 구체적인 디렉션 대신 그 인물의 큰 그림을 잡아주는 식인 것 같다. 마동석에게는 그림자의 수장을 연기하며 감정의 기복이 있는 리듬을 타지 말 것을 주문했단다.
"감독님은 특별한 디렉션은 하지 않으세요. 연기를 열어놓아 주시죠. 단, 제가 맡은 그림자의 수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리듬 타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무슨 말이냐면요, 뻣뻣한 그런 느낌으로 하는 걸 원하신거죠. 경직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러다가 뒤에 힘이 느껴질거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정말 엔딩을 보니 그렇더라고요. 확실한 목표를 갖고 있는 인물. 가끔은 목표가 있더라도 사람은 흔들리기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이 그림자는 끝까지 힘 있게 가요. 이 캐릭터는 제게 정말 숙제같았어요. 초반에 잘만 잡으면, 현장에 몸만 가도 툭툭 나오는 캐릭터가 있는데, 이 인물는 끊임없이 집중을 놓치면 안 됐죠."
문어체 대사의 향연이지만, 그림자 마동석의 대사들은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림자에게 감정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모든 걸 상징적으로 사람들한테 던지는 그 한 마디가 한 순간 격정적으로 변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동석 역시 그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너는 왜 그래야만 했냐'고 묻는 이의 진한 슬픔이 느껴진다.
7개 역에 맞는 의상을 '코스프레' 해서 연기한다는 것은 베테랑 배우에게도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일대일'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연극같은 영화다. 배우는 쉴 새 없이 옷을 갈아입고 관객들이 보는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한다. 하지만 그 연극 속 배우가 또 다른 배우에게 연기를 한다는 것을 관객은 알고 있다.
"때마다 거기에 맞는 의상을 입고, 납치한 사람을 두고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연기를 한다는 것을 관객이 알아야하고요. 그렇기에 연기를 너무 잘 하면 일반인이 아니라 마치 연기자인 것 같아 진정성이 없고, 그렇다고 연기를 못 하면 납치된 상대방이 믿지 않겠죠. 그 선을 유지하는 게 힘들었어요."
이 작품에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사실 노개런티 출연은 처음이 아니다. '작품만 좋다면' 그는 쉬지 않는다. 재능 기부와 끊임없는 도전으로 재능 발전을 동시에 하는 그다. 현재 사극영화 '상의원'을 촬영 중이고 오는 여름 드라마 '나쁜 녀석들'과 영화 '악의 연대기' 촬영을 병행한다. 7월 '군도:민란의 시대'도 개봉시킨다. 지난 해처럼, 아니 언제나처럼 눈코뜰새없이 바쁜 충무로 대표 주자다.
"일을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원동력이요? 무엇보다 금방 금방 회복이 돼요. 하하. 가장 큰 것은 아버님, 어머님이 좋아하셔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제는 영화관들 찾아가시기 보다 TV로 영화를 보시는데 제가 출연하는 영화가 방송을 하면 꼭 챙겨 보세요. 할 수 있을 때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마동석이 김기덕 감독을 만났을 때. 이미지는 변한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색깔과도 같아 전혀 다른 무엇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원본 위에 뭔가가 덧입혀 지는 것이다. 그는 잠시 '배우에게 이미지란?' 이란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말을 들려줬다.
"제게 남자다운 이미지가 강하다고 하잖아요. 형사, 경찰, 때론 악당 같은. 그러다 로맨틱 코미디 '결혼전야' 같은 재미있는 작품을 하면 전에 한 것은 잊혀지게 되죠. 이미지라는 건 완성된 어떤 것이라기 보다는 색깔이 붉고 파랗고 그런 느낌인 것 같어요. 왜 붉은 색에 파랑색을 칠하면 파랗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보라색이 되잖아요. 그런 거죠. 너무 많이 터치하면 시커매지겠지만 그것도 자기 나름의 어떤 빛깔을 띄게 되겠죠."
쉽지만은 않은 영화. 그러나 궁금해지는 영화. 주연배우로서 마지막으로 '일대일'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달라고 주문 했다.
"제 스스로는 앞으로 이런 영화를 또 찍을 수 있을까 싶어요. 여러 가지 모순과 아이러니들, 그리고 영화가 지닌 질문에 대해 답을 생각하게 되죠. 자연스럽게. '나는 영화 속 캐릭터 중 누구에 가까울까?' 이런 걸 생각하게 돼요. 보는 이에 따라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있고 피해자일 수도 있을 거에요. 거기에서 오는 씁쓸함도 있고요.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영화가 주는 또 다른 의미이자 재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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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